"제대로 된 새우깡을 만들기 위해 시제품 개발에만 밀가루 80트럭분을
쏟아부었습니다. 설비를 고치고 또 고치고 하는데도 밀가루반죽을 튀겨보면
계속 막대기처럼 단단한 제품만 나오기 때문이었죠. 지금이야 현상금을
걸어도 이런 불량품을 찾아내기 어렵지만 당시엔 설비가 안정되지 않아
무척 애를 먹었어요"

우리나라 스낵시장에서 대표적 장수상품으로 꼽히며 수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농심의 "새우깡"개발을 주도했던 이 회사 신재익(57)
고문은 개발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회고했다.

신 고문은 "새우깡은 사장부터 말단까지 한마음이 되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은 결과"라고 말했다.

"새우깡"은 기획단계부터 심한 산고를 겪었다.

새우로 밀가루 스낵을 만들자고 맨먼저 제안한 사람은 신춘호 회장(당시
사장)이었다.

그는 일본 출장길에서 새우과자를 먹어보고 돌아와서 이 제안을 했다.

이에 대해 신 고문(당시 연구실장)을 비롯한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반대했다.

그는 "스낵을 만들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많이 먹는 옥수수 스낵을
만들어야 한다며 고집을 피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밀가루 스낵을 만들겠다는 신 사장의 의지가 너무 강해 결국
승복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개발을 시작했지만 신 사장이든 실무자들이든 밀가루 스낵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었다.

기술도 없고 노하우도 없었다.

일본 중소업체에서 들여온 설비가 전부였다.

이런 상태에서 밀가루반죽을 튀겨보면 기계에서는 어김없이 단단한 불량품만
쏟아져 나왔다.

신 고문은 "일본 기계업체에서 파견나온 사람한테 한두마디 시덥잖은 충고를
들으면 그 말에 매달려 밤낮으로 연구를 거듭했다"고 회고했다.

건조기 성능을 개선할 때는 개발담당자들이 당시 서울 독산동에 있던 공장
바닥에 거적을 깔아놓고 자기도 했다.

이 무렵 일본에서 밀가루 스낵에 관해 조금 아는 사람을 데려와 조언을
받았는데 이 사람은 노트를 감춰가며 찔끔찔끔 얘기해 주었다.

어느날 점심시간 농심 실무자들은 이 사람의 가방을 몰래 열어 노트를
베꼈다.

신 고문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자료였지만 당시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고 술회했다.

제품을 발매하기 직전에는 이름 때문에 또 한차례 실랑이가 벌어졌다.

신 사장이 "새우깡이라고 짓자"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실무자들은 다시 반대했다.

"깡"이란 말은 "깡패"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신 사장은 "수수깡이란 말도 있지 않으냐"며 고집을 피워 관철시켰다

신 고문은 "새우깡"개발 당시를 회고하면서 "최선을 다하고도 개발에 실패할
경우 최고경영자가 실무자들을 문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공장을 경쟁사에 매각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만큼 회사 사정이 어려웠는
데도 신 사장이 개발담당자들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격려해 주었기에 장수
스낵 새우깡이 나올 수 있었다"고 들려줬다.

< 김광현 기자 k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