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인류에게 던져지는 수수께끼는 끝없다.

인류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발견, 그것은 보아야 할 것을 꼭 보도록 눈을 얼마나 훈련시켰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강조한 고고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아직 덜 훈련받은 우리들의 눈은 여전히 청맹과니일 때가 많다.

올두바이 골짜기에서 사람의 조상으로 보이는 뼈를 발견해 호모 하빌리스를
규명했던 루이스 리키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한 분야의 공부만으로는 내가 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나는 현대 언어를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했고, 그 다음에는
고고학과 인류학을 마쳤으며, 대학원 과정에서 척추동물학과 지질학을
공부했고, 그 후에는 또 로열칼리지 의과대학에서 1년 동안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광물학도 함께 배웠다"

어쩌면 우리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퍼즐 속의 한 좌표로 잠시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우연 속의 필연일까?

과거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해서도 우리가 스스로를 설득하거나 납득할 수
있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익히 아는 일 이외에 우리가 자신있게 아는
것이란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희망이라고 하자.

가끔은 굴절되기도 하지만, 발견이며 발명, 그 어느 것도 멈출 수 없는
연속선상에서 불연속적으로 존재하는 물음들.

그 신선함이 빛의 속도로 올 때, 가히 "상상력은 빛보다 빠르다"라고 한
니체의 말은 갈수록 유효하다.

그러나 이렇게 희망적인 미래에 앞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광속으로 오는 희망을 받아 안을 준비는 돼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오늘"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오늘이
와도 어제를 살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미리 내일을 살아버린다.

우리 인류는 늘 이가 맞지 않는 낡은 가위처럼 걷다가 무덤으로 가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해 보다 더 밑변이 넓고 안정감있는
지식과 의지의 피라미드가 우리들의 발 아래를 받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저무는 20세기도 그렇게 해서 빚어진 시간의 그릇 아니었던가.

이 어마어마한 우주라는 영원 속에서 인간이 정한 칸막이로 시간을 구분할
때 어제라는 이름이면 어떻고 내일이라는 이름이면 또 어떠랴만, 이제 우주가
겨우 오늘이 된다고 할 때 어쩌면 지난 2000년은 모두 합하여 "어제라고
불러야 할 한 토막" 정도일지 누가 아는가.

우리에게는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흐드러지다.

그 찬란한 캄캄함이 가능성이긴 하지만.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의 나이는 46억년 정도라고 한다.

한반도는 30억년 가량.

그 가운데 2000년은 이틀도 채 안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엿새를 일하고 하루를 쉬었다는 창세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아직 까마득하다.

에덴은 까마득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설렐 수밖에 없는 문명을 나날이 창조하며 풍요를 더해가고
있다.

매일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고, 더 좋은 것들이 소개된다.

누군가는 발견하고, 그리고 누군가는 발명한다.

누구는 개척자가 되고, 누구는 상속인이 된다.

그리고 순환한다.

준비된 자들에게 찾아오는 전령들은 마치 아주 옛날이라면 신께서만 아실
일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과학이다.

그러나 우주의 극비를 알아가는 이 두근거림들은 사실 평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우물쭈물했던 몇몇 천재들의 위대한 실수 혹은 실패,
그리고 좌절들이 쏘아올린 화산의 꽃불 무늬일지 모른다.

언제나 영광 앞에서 쓸쓸했던 비재들의 가혹한 대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2000년 앞에, 그보다 더 많은 옛날 앞에 경배해야 한다.

그리고 다가올 나날에도 경배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가 점령하지 못한 곳과 시간을 향해 마음을 쏘아올리며 이미
"지나간 미래"와 "다시 오게 될 어제"에 대해서도 예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무엇보다 겸손에 대해 생각해야 하리라.

우리는 너무 떠들썩하게, 그리고 경망스럽게 아직 만세도 되지 않은 2000년
간의 우리들 업적에 대해 지나치게 자화자찬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무리 훈련을 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도 우리가 인간인 바에는 어쩌면 꼭
보아야만 할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서 검은 찬란함인 미지는 마치 신처럼 우리 앞에 놓여있는 듯하다고
표현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오, 멋진 신세계여!"라고 경이로워하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신은 어디서
중얼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너희들에겐 새롭겠구나"

< moon364@chollian.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