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4개국 순방 결산 ]

지난 10월하순 전경련이 주최한 "국제자문단회의에서 싱가포르 리콴유
수상과 나눈 대화다.

"리 수상은 영국 런던 정경대학(LSE)에서 수학했다고 들었습니다"

리 수상은"46년이었지요"라고 답했다.

이에 필자는 "나도 LSE 에서 수학했으니 우리는 동창입니다. 당신보다 9년
뒤가 되지만... 리 수상의 일본 공식방문이 언제였습니까"

"67년이지요"

"당시 리 수상은 일본에서 전쟁 피해보상 등으로 5백만달러를 얻었고
이것으로 싱가포르에 정보기술연수센터를 설립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소상히 기억하십니까"

"그때부터 리 수상이 싱가포르를 정보국가로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주의깊게
봐 왔습니다. 여기 계신 이용태 삼보 회장은 우리나라 컴퓨터수출
제일인자입니다. 우리도 이 회장과 함께 리 수상을 뒤따라 정보기술훈련센터
를 추진했습니다"

이 대화 과정에서 리 수상이 한국 노사문제에 대한 우려를 다시 표시했다.

"TV에서 본 한국의 노사대치상황, 특히 경찰 못지않은 중무장을 한 노조측의
전투태세에 놀랐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노사 양자가 마주앉아 대결이 아닌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국가, 사회의 기본은 법과 질서입니다. 법과 질서속에
노사관계도 있어야지요. 이것이 나의 국가 운영 철학입니다"

67년 전경련 사절단의 싱가포르 시찰때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지금까지
순방한 타이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에 대한 중간평가 기회를 가졌다.

이 지역과의 경제협력 잠재력은 엄청나다.

앞으로 효과적 전략 구상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는 1차적인 결론을
얻었다.

이 중간평가 과정에서 필자는 동아일보 이채주 차장과 시찰소감을 나눴다.

합판으로 급조한 회의실 벽에는 색이 바랜 세계지도가 걸려있다.

"이 차장. 저 지도에서 한반도를 보시오. 지구의 북반구에 그것도 북으로
밀어붙인 듯 쳐져있고, 북쪽은 양대 공산국가인 중국 러시아로 꽉 막혔고.
그나마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돼 있으니 얼마나 처량하오"

"세계 교통이나 상거래, 정보흐름의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에 있으니 무엇을
보고 한국에 투자하겠소. 그러니 한국은 이 지정학적 불리점을 극복할 대담한
발상이 있어야 할 것 같소"

"대담한 발상이 무엇인데요"이 차장은 관심을 보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남한을 홍콩과 같은 자유무역지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왔소"

이에 이채주씨는 자못 놀라는 기색이었다.

"한국의 홍콩화라"

"아니 지금 당장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사고부터 행정관행 법.제도
등을 대담하게 자유.개방쪽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말이오. 이번에 귀국하면
첫단계로 임해수출 자유지역구상을 제안하려고 하오. 그런데 이 차장에게
부탁이 있소. 협회가 수출자유지역구상을 제시하면 또 학생이나 일부 지식인
들은 이제 경제인들이 영토까지 말아먹으려 한다고 반대할 것이 아니오.
그러니 민족지인 동아일보에 그것이 아니라는 기획기사를 써 주시오"

이채주씨는 약간 생각하다가 "그렇게 하지요"라고 선선히 응했다.

사실 이채주씨와는 여행중 같은 방을 쓰면서 내 생각을 많이 말했다.

필자가 자유무역구상을 하게 된 것은 60년 4.19 직후다.

이때 미국 푸에르토리코에서 개최된 "세계기획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비행기속에서 한 주간지에 실린 아일랜드 특집기사를 읽었다.

문 닫았던 샤논(Shannon) 공항을 공항자유지역으로 탈바꿈시켜 경제부흥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사연은 이러하다.

샤논공항은 영국 런던이나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프로펠러 여객기의
마지막 급유 기착지였다.

그런데 제트여객기 개발로 항공 거리가 길어져 이 급유시설이 필요 없게
됐다.

샤논공항 1만5천명 종업원이 일시에 직장을 잃었다.

이때 공항 전체를 자유수출지역으로 부흥시켰다는 것이다.

외자를 유치해 비행기로 수송할 수 있는 가벼운 상품(기타를 비롯한 악기 및
전자기기) 등을 생산해 옛 종업원들을 복직시켰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 한국에 필요한 것이 바로 자유수출지역이라고 전율같은
충격을 받았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