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13일.

대학생 이영택씨는 E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컴퓨터를 켜니 모니터에는 선거일임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
있다.

"오늘은 국회의원 투표일입니다. 한분도 빠짐없이 투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투표는 선관위 인터넷홈페이지(www.nec.co.kr)에 접속하시고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후 전자서명을 하고 투표하시면 됩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온 것이다.

이씨는 선관위 화면에 접속하고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했다.

전자서명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나온다.

서명을 마치니 화면에는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네명의 후보자 프로필이
등장한다.

후보의 얼굴을 클릭하니 그 후보의 가족사항 성격 재산 공약 등 방대한
양의 정보가 들어 있는 화면이 뜬다.

전자유세란을 클릭했다.

후보가 녹화해 놓은 유세장면이 화면에서 흘러나온다.

이씨는 전자투표란으로 돌아가 후보를 선택하는 것으로 투표를 마쳤다.

<> 인터넷 광장의 참여정치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날 표정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이처럼 투표행태를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 확실하다.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태를 만들어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예측은 대의제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체제가 궁극적으로
직접민주주의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광장이 아니라 인터넷광장을 통해 참여정치
가 펼쳐지는 것이다.

"텔리데모크라시" 또는 "사이버크라시".

언제 어디에 있건간에 전자투표가 가능하기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때는 직접 국민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또 기존 정당을 사이버공간을 중심으로 한 사이버정당
으로 변화하게 할 것이다.

가장 먼저 없어지는 것은 현재의 지구당 조직이다.

원시적 형태로 조직돼 있고 선거운동때만 활용하는 조직은 사이버공간에서의
정치활동이 활성화되면 더이상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정당의 정책수렴도 사이버공간을 통한 국민들의 참여에 의해 이뤄진다.

국민들도 연고지가 아닌 정책을 보고 지지정당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치자금을 내는 행태도 변화한다.

인터넷을 통해 정당의 사이트에 접속, 기부하고 싶은 금액을 지정하고
자신의 신용카드 번호를 적어 넣으면 통장에서 자동적으로 이체된다.

물론 이같은 정치자금은 신용감시기관들이 언제든 점검할 수 있다.

이를 통하지 않은 자금은 모두 불법정치자금으로 간주돼 국고에 환수된다.

정경유착 등의 용어는 사라질 것이다.

국회도 물론 사이버 국회로 변화한다.

각종 법안에 대한 공청회는 온라인을 통해 이뤄진다.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다.

<> 돈 안드는 정치

선거유세도 사라진다.

후보자들은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유세장면을 녹화해 유권자들의
E메일로 전송하면 된다.

또 합동유세도 인터넷을 통해 중계 방송된다.

컴퓨터앞에 앉아 있는 국민들은 후보자들에게 질문할 내용이 있으면 즉석
에서 E메일로 전송한다.

공부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국민들의 질문에 곧바로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간 경쟁도 정책경쟁으로 나타날수 밖에 없다.

국민들이 실질적 감시자로 등장하는 것이다.

정치세력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정당의 수도 늘어난다.

과거와 같이 정당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
이다.

정당한 창당의 목적과 네티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정책능력을 갖추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같은 미래를 예측가능케 하는 일들이 이미 현실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이미 홈페이지에 국민들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수렴하고 있다.

미국의 백악관 홈페이지와 우리나라의 청와대 홈페이지 등은 국민들이
직접 접속, 각종 민원을 직접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놓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93년 미테랑 전 대통령이 방송사의 PC 앞에서 "미니텔"
이라는 통신망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79년 첫선을 보인 미니텔은 대부분의 프랑스 가정에 보급돼 있는 미디어다.

프랑스의 TV와 라디오 방송사들은 미니텔을 통해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주요 정치적 현안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물을수 있는 수단으로
전자민주주의의 단초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확산되는 웹유세

미국에서는 지난해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를 이같은 전자유세의 표본으로
꼽고 있다.

프로레슬러 출신의 제시 벤추라의 당선에 웹유세(e-campaigning)가 결정적
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개월동안 유권자 3천여명의 E메일 리스트만 갖고 선거운동을 펼쳤다.

선거자금도 3분의 2를 인터넷을 통해 접수했다.

결국 그는 젊은 유권자들로 부터 많은 표를 얻어 선거에 승리했다.

일본에서는 시험적으로 개발된 전자투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있는 컴퓨터와 전국 각지의 투표소를 전용회선으로 연결
하고 투표소에는 컴퓨터 단말기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유권자는 단말기의 투표단말기에서 직접 후보자를 골라 투표하면 투표마감
후 개표와 집계과정이 생략된다.

본인 확인만 되면 전국 어느 투표소에서나 투표가 가능하다.

한편 사이버크라시에 대해서는 낙관적 견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기술을 가진 자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또다른 갈등을 불러 일으킬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또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정화되지 않은 다수의 의견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적은 비용으로 거대한 규모의 자생적 이익집단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아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뒷전으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용준 기자 juny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