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포렘 익산 공장의 박연표(남.28세)씨.

익산공장 노사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박씨는 분기마다 회사 이사회에
참석한다.

이사회에서 그가 하는 일은 회사측이 제시한 성과급안이 타당한지를 검토
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 4월 이사회에 참가하라는 회사측 공문을 받고 처음엔 당황
스러웠다.

직장 생활 겨우 4년차인 자신이 경영상 주요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에 참가
할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처음엔 최고 경영진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박씨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몇차례 자리를 함께 하면서 이제 전혀 막힘없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
할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사회에서 성과급 지급률이 결정되면 경영현황 설명회를 통해 전직원들
에게 이를 설명한다.

물론 직원대표가 참가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수 없다.

한솔포렘이 이사회에 일반직 사원을 참가시키기로 한 것은 지난해말.

IMF로 빚어진 경영위기를 타개하려면 직원들의 적극적인 경영참여가 필요
하다는 판단에서였다.

CEO(최고경영자)는 종업원의 경영참여가 투명경영을 실천하는 지름길이라며
일부 임원의 반발에도 아랑곳않고 노사위원회 대표의 이사회 참가를 밀어
붙였다.

박씨는 "임원이나 노사위원회 대표나 모두 같은 자료를 갖고 실적을 점검,
성과급을 정하기 때문에 회사를 믿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한솔포렘은 경영목표 결정에도 사원들이 직접 참가할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바텀업"(bottom up)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사원들의 토의를 거쳐 잠정결정된 경영목표는 임원들이 참가
하는 경영전략회의에서 최종 확정되는 과정을 밟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직원들은 회사의 경영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분명히 알수 있게 됐다.

문주호 대표이사는 올초 전 직원들에게 모든 경영현황을 가감없이 공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켜지고 있다.

매달 갖는 경영현황 설명회도 그 하나다.

전달 경영실적을 전 사원에게 공개하기 위한 자리다.

매월 넷째주 금요일에 사원 간담회를 주관해 회사 경영현황을 설명한다.

직원들의 제안도 받는다.

직원들의 참여의식은 높아질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지난해 2백80억원 적자를 냈던 이 회사는 올해 상반기에만 90억원
의 흑자를 달성했다.

종업원들은 상반기 성과급 1백50%를 손에 넣었고 하반기에도 1백50%를 추가
로 받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회사내에서 우선 투명경영을 실천하려는 풍조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표이사가 사원들에게 직접 경영현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것이 이젠
흔한 일이 돼 버렸다.

경영의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면 상호신뢰가 쌓일뿐 아니라 직원들의
참여도도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회사는 자연히 발전하게 된다.

조충환 한국타이어 사장이 올해 직원들과 대화를 목적으로 공장을 찾은
것만 다섯 차례다.

생산 일선에 있는 반장과 주임급들에게 회사 경영현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현장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였다.

LG정보통신 서평원 사장도 정기적으로 구미사업장을 방문한다.

노조를 대상으로 경영실적을 알려 노사가 함께 회사 경영상태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분기별로 경영실적 및 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전사업장에 위성 중계
함으로써 전 사업장 임원들이 공유케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경우는 투명경영 실천 의지를 제도화했다.

회사측 재무담당 임원들이 맡고 있던 우리사주조합 조합장과 이사 감사
대의원을 선거를 통해 뽑기로 했다.

이를 통해 노조를 경영에 참가시킴으로써 회사의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사주조합은 현대자동차 최대주주로 회사의 각종 경영자료를 받아볼수
있는 권한을 법적으로 갖게 된다.

또 회사는 감사보고서와 결산재무제표, 생산판매 월별현황 등을 노조에
통지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는 투명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최고경영층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항제철은 특별한 사안이 발생할때 중요 경영상황을 직원들에게 브리핑을
하고 최근엔 1주일에 2회 실시하는 임원회의 결과를 문서로 만들어 공개하기
시작했다.

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세스 이노베이션(PI) 작업이 완료되는 2001년
부터 어떤 직원이라도 구매에서 판매까지 전 과정을 컴퓨터에 접속하면 볼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모든 직원이 감시자가 될수 있기 때문에 각 부문의 담당자는 물론 최고
경영자라도 자의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없게 된다.

삼성은 전 임직원들이 사내 정보통신망을 통해 주요 경영정보를 알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가동중이다.

또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기획 등 주요 계열사들은 외부 주주는 물론
임직원에게 매분기 대표이사 명의로 통신문을 보내 경영성과와 향후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선 사내 투명경영으로 이룬 신뢰구축 성과가 경영실적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입증된바 있다.

경제전문 잡지인 포천지가 매년 선정해 발표하는 "일하기 좋은 1백대 최우수
기업"의 경영실적이 바로 그것.

최우수기업은 경영진과 종업원간 신뢰지수를 기준으로 선정되는데 98,99년
선정된 1백대 기업의 자기자본수익률(ROI)은 일반기업보다 2배나 높게
나왔다.

주당순이익(EPS)은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선정한 5백대 기업보다
2~3배 높다는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선진국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오픈 북 매니지먼트
(OBM)라는 이름으로 사내 투명경영을 실천해 왔다"며 "국내 기업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부합되며 기업 신인도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용준 기자 juny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