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쟁력 회의에서 게이단렌이 의견을 내놓으면 각료들은 즉각 해당
부처에 대책을 지시한다. 8월에 입법한 산업활력재생 특별조치법과 11월에
입법될 회사재건형 도산법이 그런 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일 연례 재계회의에서 이마이 다카시 게이단렌
회장이 한국측 재계 인사들에게 들려준 얘기다.

일본 특유의 민관협력체제가 산업경쟁력회의라는 모습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전후 일본경제의 고도성장에는 민관협력체제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민관간 연결고리는 크게 약화됐다.

민간쪽에서 정부의 간섭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왔다.

정부쪽에서도 통상마찰 등을 우려, 민간부문에 대한 개입을 자제해 왔다.

이같은 상황이 최근들어 현저히 달라지고 있다.

산업계가 정부를 향해 경쟁력제고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정부도 산업계 지원에 본격 뛰어들었다.

불황의 장기화로 약화되고 있는 산업의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해 민관이
공동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관협력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반도체 산업이다.

통산성과 10개 대형 반도체회사는 2001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반기술 개발에 나선다.

2천억엔 이상을 투입, 회로선폭 0.13~0.15미크론급의 미세 가공설계기술
등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이 사업에는 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미쓰비시전기 마쓰시타전기 소니
샤프 산요전기 오키전기 등 거의 모든 반도체 업체가 참여한다.

민관은 또 2004년께부터는 회로선폭 0.1미크론 이하의 차세대 미세가공기술
개발에 착수한다는 계획 아래 내년에 예비조사를 실시한다.

2001년도에는 시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연구거점도 마련키로 했다.

이에 필요한 시설은 기존의 시설을 전용, 초기투자를 경감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고집적회로를 단기간에 설계할수 있는 소프트웨어개발을 위해 수백명
의 기술자를 공동파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들 사업에 통산성은 보조금지급 등 전면적인 지원체제를 가동할 방침이다.

이번 사업으로 세계적인 표준이 될 생산기술을 확립하고 개발비부담을 대폭
절감한다는게 일본 정부와 반도체 업계의 목표다.

이같은 민관 공동사업 전개는 일본반도체산업의 전략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민관협력사업의 재개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회복시킨다는
전략이다.

80년대 미.일 무역분쟁으로 중단됐던 반도체 민관사업이 거의 20년만에 다시
부활된 것이다.

일본은 민관 공동으로 지난 70년대부터 초LSI기술 연구조합설립 등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급속도로 키워 왔다.

그러나 수출급증에 따른 미국과의 무역마찰로 공동전략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경쟁력이 약화돼 왔다.

일본업계는 현재 실적부진에 따른 자금난으로 인해 차세대 미세가공 기술
개발에서 미국에 1~2년정도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통산성은 또 문부성과 공동으로 내년초부터 대학과 기업이 공동개발하는
연구테마에 개발비를 지원한다.

이를 위해 99년도 2차 보정예산에서 90억엔을 요청할 예정이다.

대학에 사장돼 있는 기술을 실용화,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하는데 정부가
앞장선다는 것이다.

심사결과 채택된 과제에 대해 통산성은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
를 통해, 문부성은 일본학술진흥회를 통해 조성된 자금을 각각 지원한다.

첫해인 내년에는 10~15건을 선정, 건당 수억엔 규모를 지원할 예정이다.

연구과제로는 정보통신 환경 바이오 등 성장 유망분야를 집중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지역밀착형 연구과제도 발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일본의 민관협력사업에 대해 일부에서는 미국이
불공정한 보조금 지급행위로 간주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다른 나라도 업계를 지원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며
민관협력 체제의 부활에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kimks@dc4.so-net.ne.j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