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월터 < 영국 런던정경대(LSE) 국제정치경제학 교수 >


선진7개국(G7)과 한국등 신흥공업국들로 구성된 20개 주요국(G20)회의가
다음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다.

국제금융질서 재편이 이 회의의 중심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지난 20년간 이런 식의 금융개혁회의는 새로운
위기 앞에서는 무력했다.

또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의 이해에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현재 국제금융체제에는 국제결제은행(BIS)이라는 기구가 있다.

이 기구는 긴급유동성(자금)을 제공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리 국제
은행거래의 규칙을 제정, 금융위기를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G20회의는 BIS로 대표되는 바젤(BIS가 있는 스위스 도시)체제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회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BIS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과도한 은행채무가 발생
했으며 그로 인해 한국등에서 어떻게 금융위기가 발생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국제금융질서의 내용과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

바젤체제로 불리는 국제금융질서 규제시스템은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국제 은행들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들의 행위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이다.

은행 통제문제는 지난 70년대초 독일의 방크하우스 헤르스타트라는 은행이
붕괴되면서 비롯됐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이 은행의 퇴출을 명령하고 채권자보호를
거부하자 이 사태는 국제적 금융위기로 치달았다.

분데스방크의 조치에 세계각국의 금융당국과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후 G10(선진 10개국, 실제로는 G10+스위스의 11개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모임인 바젤위원회가 발족됐다.

영국과 미국은 해당 정부(본국 정부)가 은행의 관리를 책임지고 은행이
붕괴될 경우 최종 대부자로서의 역할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75년에 체결된 바젤협정은 이러한 "본국정부 관리 및 책임원칙"을 확정했다.

이때부터 어떤 국제은행도 규제와 감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지난 82년 뱅코 암브라지아노, 91년 BCCI등 다국적 대형 은행들의
도산이 잇따랐다.

두 은행 모두 역외금융시장,특히 금융자유화가 가장 잘 이뤄진 룩셈부르크에
서 실질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바젤위원회는 국제은행들에 대해 연결재무제표를 도입하도록 하고
투자유치국 정부가 국제은행들의 진입과 영업을 감독하도록 했다.

국제금융규제시스템의 두번째 요소인 "BIS적정자본비율"은 각국의 은행규제
기준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 80년대 중남미 외채위기를 맞아 미 금융당국은 미국 은행들에 채권에
대한 자본금준비규모를 확대하도록 했다.

그러자 미국은행들은 일본이나 유럽계 은행들과의 경쟁에서 불이익을 당할수
있다며 동일한 조건의 국제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88년에 적정자본협정이 체결됐다.

협정의 핵심은 G10 당국이 은행들에 대해 총 자산의 8%에 해당하는 유동자본
을 보유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국제금융체제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일부 전문가들은 국제은행위기가
앞으로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97년의 아시아외환위기로 국제금융체제의 근본적인 허점이 드러났다.

은행들의 환율위험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다는 허점이었다.

실례로 일본은행들은 한국기업들에 돈을 빌려주고 자산의 8%에 해당하는
유동자산을 적립했다.

그러나 한국은행들의 대규모 역외 외화부채로 원화가치가 크게 떨어지자
일본과 한국의 양국 은행들은 모두 위기에 직면했다.

감독책임과 관련, 구미와 일본의 금융당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감독이
철저하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

본국정부 감독원칙은 해당국의 감독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 정부주도의 신용공여가 성행하는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적정자본
비율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이런 경험들에 비춰볼 때 이번 G20회의에서는 신흥공업국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들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또 국제사회에서 금융질서 재편문제를 다룰때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논의돼야 한다.

한국은 지금 경제 및 산업구조를 국제적 관행(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추라는
외부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기축 통화국이 아닌 국가들이 안을 수밖에 없는 환율위험
과 같은 문제점을 도외시한 채 자산에 대한 위험도 기준을 강화하거나,
위험도 측정에 있어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평가에 의존하는 방법만으로는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 정리=김재창 기자 charm@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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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앤드루 월터 국제정치경제학 교수가
오는 12월6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G20회의에 앞서 한국경제신문에 보내온
기고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