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쪽 클레어몬트에 있는 게티센터엔 4백여명의
비영리단체(NPO:Non-Profit Organization) 회원들이 모였다.

피터 드러커 박사의 90회 생일에 즈음한 축하모임이었다.

이 자리에서 드러커 비영리재단의 이사회장인 프랜시스 헤셀바인은 "피터
드러커는 저널리스트로서의 명쾌한 감각, 경제학자로서의 예리한 분석능력,
그리고 폭넓은 역사적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고 그를 칭송했다.

지금은 양쪽 귀에 보청기를 꽂고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드러커이지만
"정신은 아직도 청년보다 젊고 글은 여전히 생동감이 넘친다"는 찬사도
이어졌다.

"세계 경영학계의 스승(Guru)" "20세기 마지막 경영 르네상스적 인물"
"지식경영의 아버지"...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박사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많다.

실제 그는 "처음으로 경영을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화한 인물"(퀸 밀스
하버드경영대학 교수)로 평가받는다.

"60년대말 이미 지식사회의 도래를 예견하고 지식경영을 주창한 천재적인
통찰력의 소유자"(이재규 대구대 교수)로도 유명하다.

그렇다고 피터 드러커를 경영학자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국제공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법학자다.

또 경제학자이며 정치학자 철학자 미래학자이다.

소설도 두권이나 냈고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걸친 저서를 모두 31권이나
갖고 있다.

어쨌든 한 세기를 관통한 피터 드러커의 생애는 "20세기 경제.경영사" 그
자체라는 점에서 그의 90회 생일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19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을 지낸 아버지와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어머니 사이
에서 출생했다.

지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드러커는 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다니며 머천트뱅크의 증권애널리스트로도 일했다.

이때 그는 미국 뉴욕증시의 붕괴와 대공황의 엄습을 지켜 봤다.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런던의 보험회사에
근무하던 드러커는 37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학문과 실무를 동시에 추구하고 싶었던 그에게도 미국은 "약속의 땅"이었다.

미국에서 대학교수와 유명잡지의 자유기고가로 명성을 쌓아가던 드러커는
43년 제너럴모터스(GM)의 컨설턴트로 초빙되면서 학문적 도약의 기회를
맞는다.

"기업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제도가 되었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그는 GM 연구를 통해 그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연구결과를 집약한 책이 46년 발간한 "기업의 개념".

이 책은 당시로선 처음으로 회사를 조직이나 구조, 경영자와 중간관리자의
역할 등으로 분석해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를 운영한다는건 단순히 공장이나 판매원을 관리하는
수준에 그쳤었다.

드러커는 50년대 이후 줄곧 경영과 산업질서의 가치라는 두 가지 과제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정리한 생각이 ''종업원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 생각은 최근 저서 "21세기 지식경영"에서 유능한 인재의 중요성, 특히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는 여기서 "지식근로자는 임금이나 승진 등 보상보다는 무언가를 수행
하고 공헌했다는 자각과 책임감에서 더욱 일에 대한 의욕과 열의를 갖는다"
고 갈파했다.

또 "앞으로 지식근로자는 은퇴후 자원봉사 등 비영리단체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라"고 조언한다.

드러커 자신은 예측이나 예언이란 말을 싫어한다지만 그는 일관된 논리도
꾸준히 미래를 그려온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단절의 시대"(1969) "새로운 현실"(1989)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
"21세기 지식경영"(1999) 등 미래저술서만도 한두권이 아니다.

그는 이들 책에서 "효과적인 경영의 확산이 자유세계를 지탱해 왔으며
앞으로 미래세계는 범세계주의(globalism) 지역주의(regionalism) 종족주의
(tribalism)가 변화의 동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드러커 박사는 현재 미국 클레어몬트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또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의 사회과학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컴퓨터 대신 아직도 타자기를 사용하는 그는 90세의 노구에도 "글을 쓰는건
억제할 수 없는 노이로제"라며 왕성한 저술활동을 펴고 있다.

"지식근로자들은 인생 후반을 미리미리 계획하라"고 강조하는 그야말로
"지식인의 아름다운 노년"을 실천해 보여주고 있는 듯싶다.

< 차병석 기자 chab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