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일 중국은 공산당 정권 수립 50주년을 맞았다.

꼭 반 세기 전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이긴 모택동이 공산당 정권의 수립을
선포했던 북경 천안문 앞 바로 그 자리에 서서 강택민 주석은 기념 행사를
주도했다.

공산당 정권이 중국을 지배하게 된 것은 20세기의 중요한 사건이었고 지금
세계에서 중국이 지닌 무게는 무척 크므로 그 행사는 온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중국의 앞날에 대한 논의들도 활발했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공산당의 집권 이후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평가했고 21세기엔 초강대국이
되리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40억 달러나 쓰고 50만명이 참가한 그 화려한 행사도 지금 중국
사회가 안은 근본적 모순을 가릴 수는 없었다.

실은 역설적으로 중국 정부가 큰 돈을 들이고 철저하게 통제해서 세상에
내보인 그 행사는 전체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김으로써 그런 모순을 또렷이
보여주었다.

1970년대 말엽부터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열성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정치
분야에선 아직 공산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데 시장 경제가 뜻하는 경제적
자유와 공산당의 권력 독점이 뜻하는 정치적 억압은 본질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사회가 안은 근본적 모순으로 중국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고
보다 나은 사회로의 자연스러운 진화를 막고 있다.

시장경제는 규칙들에 바탕을 둔 체계다.

사회는 모든 경제 주체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만 마련해놓고 나머지는 경제
주체들에게 맡긴다.

따라서 시장 경제에서 규칙들의 합리성과 공정성은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반면에 공산당의 권력 독점은 중국 사회에서 궁극적 규범이 공산당의 자의적
판단이지 중립적 규칙은 아님을 뜻한다.

자연히 공산당의 권력 독점은 정치 분야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규칙들이 나와 시행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는다.

중국의 인권 문제가 끊임없이 외교적 마찰을 일으킨다는 사정이 가리키는
것처럼 지금 중국에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법의
지배조차 확립되지 못했다.

이런 모순은 앞으로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점점 심화될 것이다.

중국은 무척 빠르게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그동안 잘못된
체제와 정책으로 다른 나라들에 뒤떨어졌던 부분을 만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산주의 체제가 안은 본질적 비효율에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과 같은
정책적 재앙들이 겹쳐서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뒤로 중국은 많은 시간을
잃었다.

공산당이 집권한 뒤 정책의 실패로 3천만명이 죽었다는 사실과 좁은 섬으로
쫓겨간 국민당 정권이 타이완의 경제를 크게 발전시켰다는 사실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1978년 등소평의 지도 아래 개방 정책을 채택한 뒤에야 중국 경제는 비로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진했던 것을 만회하는 일은 경제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것보다
비교적 쉽다.

이제 중국 경제는 상당히 발전했고 그렇게 발전된 시장경제 체제는 정치적
자유를 요구한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경제 주체들의 자유로운 선택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다.

그리고 기본적 요구들을 충족한 사람들은 보다 큰 정치적 자유를 갈구하게
된다.

자연히 권력을 독점하고서 시장을 지도하고 통제하는 공산당 정권은 경제에
점점 큰 짐이 될 것이고 시민들의 불만을 키워서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공산당 정권이 권력을 독점하는 한 중국 사회는 비효율과 부패에 시달려서
제대로 발전할 수 없을 터이다.

불행하게도 공산당 정권은 권력을 계속 쥐려고 애쓸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공산당 정권이 중국 시민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전달
하려고 애쓴 전언은 공산당 정권만이 중국을 안정 속에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점에서 상당히 민첩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미 그들은 파산한
공산주의 대신 민족주의를 내세워 계속 중국 사회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타이완 문제에 대해 그리도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시장경제와 전제 정권 사이의 모순은 전제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자리잡아야 해소될 수 있다.

중국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로 무척 권위주의적이었던 타이완과 싱가포르는
이미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중국이 워낙 큰 사회인 데다가 공산주의 체제로부터의 변혁이라 민주화의
과정이 훨씬 폭발적일 터이므로 중국의 민주화는 두 나라들의 경우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런 민주화가 언제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중국의 운명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의 앞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중국엔 시장 경제와 전제 정권 사이에 해소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하며 그 모순은 전제 정권의 붕괴와 민주주의 체제의 정립으로
해소되리라는 것이다.

집권 50주년 행사가 아무리 화려했어도 그 사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