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하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지난 7월 이후 대우그룹 문제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고 11월
금융시장 대란설을 잠재우기 위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4일 발표됐다.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부실정도가 예상보다 크고, 대우
채권에 대한 수익증권 환매 대책 등 정부의 지속적인 안정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었다.

11월10일 이후엔 대우채권에 대한 수익증권 환매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정부는 시급하게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았다.

안정화 대책은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의 실사작업 결과에 따라 투신사 증권사
은행, 그리고 보증회사 등 관련 금융기관들이 대우그룹의 부채 구조조정에
따른 31조여원의 부실을 출자전환, 전환사채 인수, 원리금 우대, 성업공사로
부터 대우 무보증채 인수 등으로 삭감해주기로 했다.

또 부채 삭감으로 인해 경영상 어려움에 직면한 금융기관에 대해선 공적자금
을 동원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종합대책이 금융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고, 금융시장의 안정화
에는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금융개혁 정책이 시장원리와 시장규율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고 미봉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매우 실망적이다.

첫째,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기 전에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먼저 구하지 않은 것이 그렇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발생한지 2년이 넘어가고 있다.

정부는 최소한 거시경제 관점에서 본다면 IMF 위기가 극복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공적자금이 동원돼야 하는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먼저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공적자금은 결국 많은 부분이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전가된다.

때문에 정책당국의 깊은 책임감 없이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둘째, 정부의 안정화 대책이 과연 시장원리와 시장규율에 충실한지에 대한
정부의 원칙과 기준이 충분하고도 투명하게 제시돼야 한다.

정부의 정책대응에는 손실부담 원칙과 이들을 금융기관들에 배분한 결과만
제시하고 있다.

이만하면 금융시장은 안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기업에 대한 청산기준과 회생여부에 대한 기준, 그리고 금융기관들의 부실
여부에 대한 판단과 향후 처리 방향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는 정부의 정책들이 피상적이고 단기적인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개혁에는 준비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든 금융기관이든 구조조정의 대원칙은 부실화가 심각해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부실화 정도에 따라 시장에서 퇴출되는 아주
단순한 논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원칙의 제약조건으로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부실정도가 우리
경제규모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 있느냐 외에는 어느 것도 예외가 돼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 "11.4 안정화 대책"까지 발표된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 내용들은 이러한 시장원리에 충실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기에는
거리감이 있다.

정부정책의 시행착오에 따른 국민의 세금부담 가중이 크게 우려될 뿐이다.

특히 어제 발표된 정책내용중에서도 기업 및 금융기관의 어려운 부문을
정부가 모두 책임지겠다는 의도는 좋으나 기업부실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내용이 없어 아쉽다.

정부가 아직도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에는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IMF 경제위기가 발생한지도 이미 2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금융기관이 아직도 수십조원의 부채를 갖고 있는 기업의 재무상태
와 경영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금융시장
에는 자율성을 갖고 있는 금융기관은 없고 금융당국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스럽다.

이러한 금융기관들의 안이한 경영에 대한 책임문제를 엄격하게 묻지 않는
다면 결국 금융기관들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문제를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개인투자자의 손실부담 원칙도 이 기회에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수익증권 투자는 원금 손실의 위험에 대해서 투자자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러한 손실부담을 외면한 것은 또 하나의 경제원칙을
도외시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정부 금융기관 기업, 그리고
개인투자자들이 시장규율과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또 하나의 금융위기를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njh@keri.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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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약력

=<>서강대 경제학과
<>미국 듀크대 경제학 박사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