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지우는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해낸 건 고문에 대한 체험에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80년 5월 광주사태를 알리는 유인물을 들고 있다 체포됐던 그는 그해 여름에
당한 고문을 마취없는 외과수술에 비유했다.

"자물쇠속의 긴 낭하"는 바로 그때 상황을 담은 것이다.

"발자국소리, 자물쇠속의 긴 낭하로/사람이 온다/사람이 무섭다/자물쇠
콧속으로 흐린산 물이/흘러 들어온다/뇌막에 아득하게/떠있는 어린시절
소금쟁이/물풀들, 물소리가/귓바퀴를 두어바퀴/맴돌다 우뚝 멈추고 요구한다/
"말해!"/자물쇠의 식도를 타고 뜨겁게/다시 전화벨이 울린다/목구멍으로 꿀떡
/시린 칼자루가 들어온다/칼에 꽂힌채/묻는 말에 대답하기/우리가 사람이란
걸 그만둡시다"

소설 "욕망의 소리" 때문에 붙잡혀갔던 작가 한수산 역시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너무나 치욕스러워 죽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고문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는 폭음끝에 일찍 세상을 뜬 시인 박정만
을 비롯한 피해자들의 죽음이 입증하거니와 살아남은 사람도 일생동안 인간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에 떤다.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이 마침내 자수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도록 만들었던 그가 재직중 청룡봉
사상 옥조근정훈장 등 16가지의 표창을 받았다는 사실은 슬프고 딱하다.

혹자는 그 또한 체제의 희생자일 뿐이라지만 이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칠레 피노체트정권의 만행을 다룬 영화 "시고니 위버의 진실"에서 주인공은
고문당한지 15년이 지났지만 바스락소리만 나도 권총을 찾아들고 당시
현장에서 들리던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만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는 그러나 고문범의 자백과 참회를 받아낸 뒤 안정을 찾게 된다.

이근안이 얼마나 진실을 고백할지는 알수 없지만 진정한 참회는 작은
기억에도 소스라치는 사람들의 상처를 다소나마 치유할수 있을 것에
틀림없다.

이근안에 대한 처리가 이땅에서 고문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