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입법이 번번이 좌초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8.15 경축사의 핵심경제정책의 하나로 공약한 세제개혁마저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잇따른 개혁후퇴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인기에만 연연하는 정치권의
입김에 재경부를 비롯한 경제부처들이 소신있게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익단체 등 기득권층의 반발도 개혁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이 때문에 당초 정책안이 나올때는 선진국 수준의 개혁성과를 이뤄낼
것처럼 요란하지만 추진과정에서 "용두사미" 꼴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민들은 초기 정부 발표만 믿고 대단한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가
실망하기 일쑤다.

변호사 업무영역을 손질하는 작업도 대표적인 케이스의 하나다.

재경부는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주던 것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세무사법개정을 추진해 왔다.

두 자격증 사이에 큰 연관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의 반대에 부딪쳐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목적세폐지는 재정개혁의 출발점"이라며 작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교육세, 농특세, 교통세 등 목적세 내년 폐지 방안도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해당 특별회계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건설교통부, 농림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의 주장이 강경하기 때문이다.

청렴하고 전문적인 국세공무원을 별도로 양성해 세정개혁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국세공무원법 제정도 무산됐다.

"정부의 통일적인 인사정책 방향과 맞아야 한다"는 중앙인사위원회의
지적에 그만 꼬리를 내리고 만 것.

IMF(국제통화기금) 체제에서 몰락한 중산층을 북돋운다면서 김대중 대통령
이 8.15 경축사에서 약속한 소득분배 개선방안들도 대부분 표류중이다.

전용면적 50-74평의 중형고급주택에 대해 취득세를 중과세하려던 계획은
국무회의 심의과정에서 백지화됐고 양도세 부과기준인 고급주택의 범위는
5억원에서 6억원으로 상향조정돼 공평과세와는 반대방향으로 결론지어졌다.

정부 경제부처들의 이같은 무소신과 눈치보기에 대해 경실련의 김승보
정책실장은 "8.15 경축사 이래로 대통령이 비전을 제시하고 개혁을 표방
했지만 그 이후 정치논리에 의해 개혁은 후퇴를 거듭해 왔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현 정권은 내년 총선을 의식하겠지만 개혁의지를 의심받을 경우
총선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정치권의 동향을 간파해서 그럴싸한 개혁후퇴 논리를 재빨리
만들어 내는 것을 유능한 행정관료라고 착각하는 재경부 등 경제부처
공무원들의 무소신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홍일표 참여연대 간사는 "중형고급주택에 대한 중과세 방안은 국회에 상정
되기도 전에 국무회의에서 철회되는 등 요즈음 공무원들은 정치권의 눈치
살피기에만 여념이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 김병일 기자 kbi@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