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필규 < 산업1부장 >

니혼게이자이신문(일본경제신문)이 발행하는 경제전문잡지인 닛케이
비즈니스는 최근호에 기업수명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89년부터 99년까지 미일 시가총액 상위 1백대기업을 각각 조사해본 결과 한
기업이 1백대기업에 끼는 기간은 미국의 경우 평균 4.8년, 일본은 6.4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닛케이 비즈니스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평균수명(기업이 번영을 구가
하는 기간)이 30년에서 5년정도로 단축됐다고 결론지었다.

83년 조사에선 한 기업이 일단 1백대기업 반열에 낄 경우 평균 30년동안은
자리를 유지했다.

기업 평균수명의 단축은 경영환경이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반영
한다.

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른 메가 컴피티션(대경쟁), 시장의 빠른 변화 등이 그
요인이다.

대경쟁 시대에서 장수할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서슴지않고 "소프트력"을 키우는데 있다고 말한다.

"소프트노믹스"(Softnomics)시대선 기업이나 국가간 우열을 좌우하는 요소는
자본이나 노동, 토지가 아니라 "소프트의 가치"다.

이 소프트력은 "창의력과 스피드"(Creativity & Speed,C&S)에 의해 키워질
수 있다.

결국 "C&S"가 21세기 핵심 경쟁요소인 셈이다.

컬러TV 워크맨 캠코더 이후 성장엔진을 찾지못해 고전하던 일 소니는 경쟁
기업보다 앞서 64비트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들어내 승승장구하고 있다.

기술력 1위라는 오만에 사로잡혀 위기를 맞았던 애플은 속이 보이는 투명한
PC 아이맥을 창안,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C&S"가 생존 키워드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창의력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예술과 연관지어 고도의 독창적 아이디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기업이나 국가 경영에 필요한 창의력은 예술적 창의력과는 다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머빌 교수는 창의력을 "문제에 접근하며 해결책을
찾는 독특한 방식"으로 풀이한다.

그는 창의력에는 전문성과 동기부여라는 두측면이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성은 문제를 탐색하고 해결하기 위한 지식의 가용범위로 지적편력의
산물이다.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에디슨의 말처럼 머리만 좋다고
창의력이 생기는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해야 창의력도 높아진다는게 에이머빌 교수의 주장이다

동기부여는 일할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창의력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얼마나 많은 자원(돈과 시간)을 투입했느
냐는 점외에 도전의식, 자율, 작업집단의 특징, 상사의 격려, 조직의 지원
등을 꼽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애쉬는 재미있는 실험으로 에이머빌 교수의 결론을
뒷받침했다.

그는 막대그래프가 그려있는 두장의 카드를 준비했다.

한장의 카드엔 막대그래프 하나를 그려넣었으며 나머지 한장엔 3개의
그래프를 그렸다.

그리고 1백23명의 실험대상자들을 한사람씩 불러 두장의 카드에서 높이가
같은 그래프를 찾아내라는 초등학생도 알수 있는 문제를 냈다.

단 사전에 8명의 바람잡이와 이들이 엉뚱한 답을 하도록 짰다.

실험대상자와 함께 면접을 본 바람잡이들은 온갖 연기를 해가며 틀린 답을
냈다.

그 결과 대상자의 무려 76%가 상당히 불안에 떨면서 오답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쉬는 이 실험결과 암묵적으로 형성돼있는 집단의 규범이나 풍토가 개인의
창의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창의력이 기업 문화나 풍토에 따라 효력을 발휘될수도, 말살될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창의력이 뛰어나다 해도 2등을 해선 소용없다.

정보화사회에선 1등이 전부를 차지한다.

창의력이 제 역할을 할수 있으려면 "스피드"와 결합해야 하는 것이다.

미일간 드라마는 스피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인 키시 나가미는 일본기업이 90년대 들어 미국에
뒤진 가장 큰 요인으로 경영 속도에서 졌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고객 니즈에 대응해 회사 조직을 수평화하고
규칙과 업무 방법을 혁신했다.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종업원과 현장에 많은 권한을 주고 신속 경영을
뒷받침하는 정보통신 분야에 투자하는 한편 관리와 간접분야를 적극적으로
아웃소싱했다.

또 집행이사회제를 도입해 경영의사결정 속도를 높였다.

그 결과 미래유망 사업 기회를 "먼저" 선점할수 있었으며 상품개발 및
출하시간을 "빨리"할수 있었다.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제품을 "제때" 공급가능하게 됐으며 사람과 돈,
물류를 "자주"회전시킬수 있었다.

결과는 수익의 대폭적 개선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기업은 서류결제에 시간을 보내며 사업기회를 놓쳤다.

"창의와 속도"(C&S)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경영자나 정치 지도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C&S"를 기업이나 국가 경영에 실제로 접목시키는 지도자를 찾아보기
란 의외로 쉽지 않다.

소프트사회를 만들고 "Entrepreneurial"(기업가정신을 가진 종업원이나
국민)이 클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건 기업경영자나 정치지도자등 매니저의
손에 달려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창조적 매니저"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 phil@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