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오 < 삼성경제연구소 이사 >

한국산업은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구조조정이 지연된 전통 주력산업들은 기반 유실이 우려될 정도이다.

반면 반도체 정보통신 등 정보기술(IT) 분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들이 첨단분야에 도전했던 것이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새로운 산업을 키워 과실을 거두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이것이 지금 산업의 성장엔진을 찾아내고 키워야 하는 이유이다.

성장엔진은 벡터의 두가지 요건, 즉 올바른 방향(부가가치)과 강한 힘
(경쟁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틀린 방향으로 힘을 쏟거나 방향이 맞더라도 힘이 약하면 성장엔진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현 위기상황은 성장엔진의 방향이 잘못되고 힘이 부친 탓에 비롯된 것
아닌가.

의류산업의 경우 국내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자동화와 해외투자에
나섰다가 실패한 바 있다.

의류산업의 부가가치는 디자인, 브랜드 등에서 창출된다.

방향을 잘못 잡았던 것이다.

자동차는 단순조립에서 출발해 부품국산화, 고유모델 출시, 미주시장 진출
등을 거쳐 차세대자동차를 개발하는 단계에 와있다.

고부가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은 옳았지만 경쟁능력 강화가 늦어져 애로를
겪고 있다.

부가가치 사슬(Value chain)과 경쟁능력 측면에서 볼 때 한국산업은 4개
그룹으로 나뉜다.

1군은 가치사슬 위치와 경쟁능력에서 선진국과 맞먹는 분야다.

반도체 TFT-LCD 휴대폰 조선 등 효자산업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2군의 자동차 유화 등은 경쟁능력이 약해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광 바이오 신소재 등 신산업은 부가가치의 원천인 기초연구에 도전하고
있으나 그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3군은 가치사슬상 위치가 부적합한 산업들로 PC 섬유 신발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생산공정은 강하지만 제품개발, 부품.설비, 마케팅 등에서 부가가치
를 창출해 내지 못한다.

기계 농업 등 4군은 부가가치와 경쟁능력이 모두 문제이다.

21세기를 향하여 한국산업은 고부가가치를 꾀하고 세계에 통용되는 경쟁능력
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기술혁신, 글로벌화, 인터넷과 표준의 확산 등으로 부가가치 원천이
이동하고 있다.

또 요구되는 경쟁능력은 한층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농업의 경우 토지 노동력 혹은 기계화 등이 우위요소이지만 앞으로는 기상
정보 바이오기술 환경친화성 등이 가미된 지식산업으로 변모하게 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쇼핑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 브랜드가 없는 제품, 평판이
좋지 않은 기업 등은 생존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제 방향을 제대로 잡고 힘을 키우면서 무게중심을 유망분야로 옮겨가야
하겠다.

1군은 앞으로도 세계산업을 주도하고 강자로서 위치를 지켜야 한다.

일단 자리를 잡은 만큼 자만하지 않으면 상당 기간 한국경제를 먹여 살릴
것이다.

취약한 기초연구 마케팅 등을 보강하고 비메모리, 대화면 디스플레이,
휴대단말, 특수선 등에서 새로운 성장원천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제이다.

2군은 경쟁능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생산공정의 강점을 살리면서 제품개발, 부품.설비 등의 약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신산업은 경쟁능력의 절대 수준을 얼마나 빨리 높이는가가 관건이며 자원
제약을 감안할 때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이다.

3군은 기존의 성장패턴을 지양하고 부가가치 연쇄상의 이동을 시도해야
한다.

신제품 출시로 승부를 걸거나 아니면 PC부품 섬유기계 등에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4군은 구조조정, 부분 포기를 통해 확보한 자원을 가능성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입해야 한다.

산업 전반이 침체하더라도 제품과 기업 단위에서 강자가 출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경쟁능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업과 산업시스템의
양 차원에서 동시에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기업은 일시적인 경기호전이나 업적개선에 현혹되지 말고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지속해야 하겠다.

신제품개발, 아웃소싱, 브랜드화 등을 통해 부가가치 창출의 구조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CEO가 21세기 수종사업의 발굴.육성을 주도하고 벤처기업의 방식과 정신이
접목된다면 성공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특히 첨단이 아닌 분야도 지식을 부가하면 얼마든지 가치를 창출한다.

한 분야에 깊이 천착하는 기업 장인의 출현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한국산업에는 미래가 없다.

시스템적으로 연계되고 시너지를 발휘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산업의 성장엔진은 현재 부품, 구조물, 연료 등이 분리되어
따로 움직이는 상황이다.

정부나 업계 리더들이 방향을 잡고 새 시대에 맞도록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공동 기술개발, 대.중소기업 협력, 각종 네트워크 확충 등이 시스템의
바람직한 모습이 될 것이다.

성장엔진을 찾아내고 가동을 시키는 것은 기업이다.

기업가정신이 발휘되도록 자극과 함께 지원을 해야 한다.

< SERILEO@seri-samsung.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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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해양학과, 경영학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과학 석.박사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실 담당임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