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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전략 다시 짜자] 제2부 : (9) '시장형 금융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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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시장의 금융시장에는 스페어 타이어가 없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달 국제통화기금
    (IMF)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린스펀은 대부분의 금융활동이 은행권으로 집중돼 은행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나라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는 "취약한 금융시스템"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외환위기는 금융시스템의 위기였다.

    특히 IMF 관리체제는 은행권의 부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은행권을 통한 간접금융조달은 마비되다시피 했다.

    급기야 정부가 은행권 구조조정에 직접 칼을 들이댔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과거 압축성장시기 은행은 산업자본배분의 주조정자 역할을 했다.

    기업이 선택한 유망사업에 돈을 대는 주요 "자금원"이었다.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은행의 이같은 기능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98년 기준으로 은행의 총자산규모는 국내총생산(GNP)의 1백25%나
    차지한다.

    미국의 경우 50% 정도다.

    한국의 가계금융자산중 은행예금및 현금비율도 55%로 15%인 미국보다 훨씬
    높다.

    최근 금융시장의 두드러진 특징은 직접금융시장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 구조조정의 여파다.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의 활용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은행권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게 된 상장사들은 주식시장으로 몰려
    들었다.

    올들어 지난 8월까지 유상증자등을 통한 상장사들의 주식발행실적은
    24조9천3백76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백28.7%나 증가한 규모다.

    채권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 33조2천8백95억원과 합치면
    직접금융조달규모는 51.2%가 늘어난 50조3천4백31억원에 이르렀다.

    직접금융시장의 비중이 단기간에 급속히 성장하긴 했지만 자금조달 시장간
    의 불균형은 여전하다.

    GDP 대비 은행대출금액 비율은 1백30%다.

    반면 GDP 대비 채권발행액은 50%에 불과하다.

    자금조달 시장의 균형은 기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원하는 자금을 확보하는데
    필수적인 요건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험감수형 금융의 기능을 찾는 일이다.

    산업화시대 위험감수형 금융의 기능은 대부분 "그룹" 체제가 담당했다.

    상호지급보증이나 계열사 출자가 방법이었다.

    대기업들은 이를 토대로 "현재는 수익성이 없으나 장기적으로 유망한"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반도체나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산업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앞으로 대기업그룹에 이같은 기능을 요구하긴 힘들다.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시장형 금융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은 최근 "은행구조조정후 평가와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21세기를 주도할 지식기반산업과 벤처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금융기능이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용리스크를 회피하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 시장원리를 충실히 따르면서
    국가전략사업부문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의 대안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직접금융시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상품의 개발은 필수적이다.

    이는 시중자금의 흐름을 직접금융시장으로 돌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미 도입된 뮤추얼펀드, 자산담보부채권(ABS), 정크본드펀드 등 이외에도
    새로운 개념의 상품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직접금융시장을 지원하는 인프라도 급선무다.

    최근 도입된 스톡옵션의 활성화가 중요시되는 이유다.

    스톡옵션은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 기술개발로 성장의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장치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된
    이유는 간단하다. 자금조달이라는 메리트와 스톡옵션제를 통해 유능한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김유경 증권거래소
    국제업무실 전문위원)

    직.간접금융시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함께 절실한 것은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부의 금융정책이다.

    한국증권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시장이 실패했을 때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부로선 책임있고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경쟁력있는 금융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시장과 정부 등 금융시장 주체들의
    합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증권시장의 가격메카니즘을 통해 성장성 높은 기업으로는 자금이 쉽게
    유입되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선 자금이 빠져 나오도록"(강창희 현대투신운용
    사장)하는게 바로 시장형 금융시스템이라는 지적이다.

    < 김홍열 기자 come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2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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