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아주대 교수 / 환경도시공학 >

신당의 나팔소리와 함께 정치바람이 전국 지방에 퍼지고 있는 요즈음,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리들의 빈번한 지방 나들이에서 선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지역사업과 정치성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어느덧 지방도 정치에 단단히 오염이 되었다.

과거 중앙정치의 하부조직 노릇이나 하며 시혜나 바라던 때와 달라 요즘은
"보따리"의 부피에 따라 "표"의 향방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하자 가덕도 신항만, 컨벤션센터, 테크노파크 등 부산
경제살리기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멈춰있던 삼성자동차 공장이 3개월 시한으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내년 예산안에도 정치성 사업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가령 광양-무안 고속도로,진도대교 등은 경제성분석 결과 타당성이 없는
"선거용"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린벨트 완화 대책도 "내년 4월"을 향해 달리고 있다.

굵직굵직한 지역개발사업의 득표력은 크다.

주민들에게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를 풀겠다거나 비행장 또는 산업단지와 같은 대형사업을 유치하겠다
는 화끈한 공약들은 대개는 전시효과적이고 현시적인 사업이다.

과거에도 선거철이 되면 이런 사업의 삽질부터 했다.

그러나 이러다가 멍든 사업도 많다.

지방자치의 발전논리는 주민참여에 의한 상호경쟁이다.

지방간에 공업단지 유치나 관광지 개발을 위한 선의의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

필요하면 세일즈도 해야 하고 경쟁도 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보다 "정치"에 의존하고, 내실을 기하기보다
화려한 그림을 선호해 왔다.

중앙정치가 그렇게 길들였던 것이다.

대표적인 정치성 사업이 월드컵 사업이다.

도시마다 능력은 생각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월드컵을 유치하려 했고, 지금은
상당한 도시가 덫에 걸려 있다.

10개 도시에 경기장을 신축하기로 한 것부터가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프랑스는 월드컵 개최를 위해 주경기장 하나만 신축했고 월드컵을 성공적
으로 치러냈다.

미국의 사학자 제임스 로빈슨은 "인간의 희극"이란 저서에서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선거전은 고의적으로 사람을 감정의 수라장으로 이끌어 가며 냉정한
쟁점으로부터 관심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보통 때 같으면 능히 발휘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마비시킨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그러나 선거를 의식해서 남발되는 지역사업을 보면 낭비적인 축제다.

지금 우리는 지역갈등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고장에 대한 자존심에 예민하다.

좋은 사업을 끌어와야 하고 혐오성 사업은 다른 지역으로 밀어내야 한다.

저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박대를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낙후된 지역에서는 낙후된 서러움을 달래거나 때로는 자극하는 것이 선거
전략이 되기도 한다.

당연히 선거때마다 지방의 청사진은 현란해진다.

이로 인한 폐단이나 부작용은 클 수밖에 없다.

첫째, 이런 유의 공약은 우선 냉정한 재원조달 방안이나 또는 투자 우선
순위의 검토를 거쳐 발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약이 되기 일쑤이다.

또 억지로 추진할 경우 지역경제나 국가 또는 지방재정을 왜곡시킬 것이다.

지역개발이란 무릇 백년대계를 보며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 선거때 벼락
치기로 성안되어서야 되겠는가.

둘째, 무책임한 개발공약으로 인해 주변지역의 땅값이 올라 투기바람을
몰고 오거나 더욱 사업을 어렵게 할 가능성도 높다.

아무런 청사진도 없이 기공식을 해대는 경우도 많다.

공교롭게도 선거철만 되면 부동산값이 뛰었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지금도 그린벨트의 땅값이 꿈틀거리고 있다.

셋째, 이같은 무책임한 공약의 남발이 오히려 지역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쪽 주민의 혜택은 저쪽 주민에 상대적 소외감을 주게 마련이다.

위천공단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쟁점이 되어 있는 사안을 조정하고
양보하도록 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면 큰 일이다.

원래 개발사업이란 전문가들에 의한 냉철한 타당성분석과 예산조정 과정,
그리고 주민여론의 여과를 거쳐 확정되게 마련이다.

정부로서 또는 정당으로서 미래의 비전이나 지역의 개발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책임하고 즉흥적이 되면, 정치의 탁류가 지방을 오염시키는
결과가 된다.

지역개발사업이 표의 볼모일 수 없다.

선거철에 잘못 뿌린 씨는 후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