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4월 서울의 H병원.

9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환자가 찾아 왔다.

"인공 간을 이식해 주세요. K병원에 가봤더니 ''DNA 수리''로는 어렵다고
합니다. H병원이 인공장기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김명의 박사는 모든 병원끼리 연결된 화상정보망을 통해 환자의 진료기록을
검토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간이 워낙 손상돼 있어 수리보단 교체가 마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병원은 돼지의 간세포를 인공배양한 인공간만
취급합니다. 그것도 괜찮습니까"

다음날 이 환자는 돼지의 인공간을 이식받았다.

그의 "평생 건강 진료카드"를 검토해 본 결과 이식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서다.

이 환자는 수술을 받은뒤 젊은 시절과 다름없이 술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몸 생각해서 술 좀 그만 드세요"라는 부인의 잔소리를 계속 들으면서.

"불로장생"

인간은 태고이래 이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천하를 정복한 진시황도 결국 불로초를 구하지 못해 한줌의 재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생명은 "신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터였다.

그러나 뉴밀레니엄은 불로장생의 꿈을 어느 정도 실현시켜 주게 된다.

이 시간 현재 뉴밀레니엄을 맞는 대부분 인류가 또 다른 밀레니엄을 맞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미 노화연구소 리처드 호드 이사)

신의 손에 맞겨졌던 암 당뇨병 에이즈 치매 등이 정복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수명에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조금씩 특정 부위가 "훼손"될 따름이란 것.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지난 65년 1백52세로 사망한 영국의
토마스 파로 알려져 있다.

그는 1백10세까지 테니스와 롤러스케이트를 즐겼다고 한다.

뉴밀레니엄에는 파와 같은 1백세가 넘는 "슈퍼 로맨스 그레이"들이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 덕분에 훼손된 인체 장기를 대부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쇼핑리스트"에 인공장기가 포함되는건 뉴밀레니엄 시대의 건강생활을
상징한다.

수천년동안 인간은 몸에서 작동되는 "노화시계"를 멈추기 위해 쉼없이
정진해 왔다.

노화시계의 비밀은 "게놈프로젝트"가 쥐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는 것.

오는 2005년께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인간의 최고 수명은 2백세까지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

지난해 미 텍사스대학 사우스메디컬센터의 과학자들이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에 정상적인 사람의 세포를 조작해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명의 한계에 대한 도전장을 낸 것이다.

현재 4천여종의 질병이 유전자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인식돼온 암도 그중 하나.

한국인에게는 4명중 1명꼴로 암이 발생하고 있다.

암은 병적인 세포가 무한정 증식하는 걸 말한다.

암은 정상적인 인체기능을 방해할 뿐아니라 암이 발생한 장소에서 벗어나
다른 부위로 전이되는게 문제다.

"20세기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암의 80%는 생활습관 및 환경요인에 의해
발생하고 나머지 10~20%는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인체의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각종 단백질은 유전자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다.

약 10만개의 유전자가 존재하며 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런 유전자의 일부에 결함이 생기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한다.

현재 암의 발생 성장 전이와 관련된 수많은 종류의 유전자들이 발견되고
있어 암의 예방 진단 치료에 활용될 전망이다.

이미 유전성 위암 대장암 유방암 등의 경우 혈액을 뽑아 유전자 검사를
실시, 암의 발생여부를 미리 판정해 주는 단계에 와있다.

그래서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암은 "독안에 든 쥐"가 될거란 얘기다.

"노년의 적" 치매도 오는 2021년이면 정복된다.

미국의 미래의학자 제프리 피셔는 "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먹는 약으로
간단히 치료하는 시대가 곧 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뿐 아니다.

뇌졸증 파킨슨씨병 헌팅턴무도병 등 뇌질환도 상당부분 치유될 것으로
점쳐진다.

마음이 심장에 있지 않고 뇌에 있다는걸 안지 얼마 안되는 인류가 뇌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지...

그건 우주의 신비를 벗기는 일과 비견할 만하다.

비아그라는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꾼 약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밀레니엄 신약은 이 차원을 넘어선다.

새약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해 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정상적인 신체기능을 유지해주고 쾌락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대표적인게 "디자이너스 드럭(맞춤약)"이다.

사람의 체질이나 요구에 맞춰 약효를 내게하되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게
하는 신약이다.

유전학 분자생물학 면역학 등의 발달로 암세포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선택적
으로 그 세포만 죽이는 "기적의 미사일 항암제"도 가능하다.

변형된 음식도 약으로 사용된다.

현재 약 성분이나 예방백신 성분을 함유한 유전자 조작 바나나가 개발중
이다.

그러나 의학발달은 양날을 가진 칼과 같다.

구세주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자연을 거스르는데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남궁덕 기자 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