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이후 11개월 가량 멈춰섰던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의 생산라인이
다시 돌아가게 됐다.

삼성자동차와 그 협력업체들은 어제부터 생산라인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다음주부터 월 2천대씩 석달동안 한시적으로 6천대를 생산키로 했다.

부산시와 시민단체들은 이렇게 만들어낸 삼성의 SM5 승용차를 모두 부산에서
소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판매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삼성차의 재가동을 열망하는 부산시민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진작부터 부산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자동차살리기 범시민대책위원회와
부품협력업체의 모임인 생존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부산시민연대의 자원
봉사단은 삼성차의 재고 판매에 앞장서 왔다.

정치권에서는 국민회의 동남발전위원회가 삼성차의 채권단협의회에 재가동을
끈질기게 촉구해 왔다.

이같은 여론과 압력들이 삼성차의 재가동을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의 설명대로 삼성차를 재가동하면 공장의 자산가치를 유지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라경제를 위해,또는 부산경제를 위해 과연 바람직한 일이냐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일부 협력업체가 공장을 정리한 상황에서 2만여개의 부품을 차질없이
조달할 수 있을지, 설사 이것이 가능하다 해도 완성차의 품질이 보장할 만한
수준에 이를지, 또 2천여대의 재고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 만들어낸 물건이
제대로 팔릴지 등이 모두 의문이다.

어려움을 겪는 부품업체들이 물건값을 받지 않고 3개월간 공장을 돌릴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3개월 뒤 다시 생산을 중단할지 여부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자동차산업 정책은 "경제성이 없는 삼성차는 없애고 현대와 대우의
2사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이 방침에 따라 외국 업체를 상대로 인수자를 물색해 왔으나 지금
까지 가시화된 것은 없다.

최근에는 거꾸로 삼성이 대우차를 인수한다든가, 삼성이 삼성차의 지분을
일부 보유한 채 해외매각을 시도한다는 얘기들마저 떠돌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삼성차의 재가동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자동차산업의 큰 틀부터 정리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재가동 여부는 그 다음 일이다.

채권단은 지금이라도 생산라인을 세워놓을 때와 돌릴 때의 손익을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부산시민들의 반정부 정서나 내년의 총선 등을 의식한 정치
논리에 밀려 재가동에 동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의 손실은 또다시 채권단이 떠안게 되고 그것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