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정월 초하루 아침.

남정민(30)씨의 휴먼컴퓨터에 "서초동에 사는 환자가 급히 찾고 있습니다"
는 메시지가 나왔다.

남씨가 컴퓨터를 켜자 환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환자는 26세의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화면에 비친 얼굴이 여간 수척해 보이지 않았다.

"쇼팽의 즉흥환상곡"

그는 컴퓨터에 대고 속삭였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경쾌하게 울려퍼져 나갔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첫사랑을 떠올리세요. 그러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집니다"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난 남씨는 "음악치료사"다.

음악을 이용해 우울증이나 자폐증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이다.

그는 사무실이 따로 없다.

집이 사무실이다.

홍보도 20세기 말에 보편화된 인터넷으로 한다.

환자 가정 대부분에 보급된 컴퓨터 덕분에 외출하는 일은 거의 없다.

"화상치료"가 전부다.

e-비즈니스의 확대는 새 밀레니엄에 고학력자와 하이테크니션의 절반
정도를 재택근무자로 바꿔 놓는다.

"코쿤(cocoon.누에고치)족"도 벌써 똬리를 틀었다.

누에고치 속의 애벌레처럼 가정에 터전을 잡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신세대들이다.

재택근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테라비트급 최첨단 정보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일반화된다.

인간의 두뇌처럼 생각하고 판단해 실행하는 휴먼컴퓨터는 비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손바닥 크기의 차세대 이동전화 "IMT-2000"은 세계 어디에서든지 동화상과
데이터를 주고받게 한다.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직장에 나가는게 무의미해지는 것도 마찬가지.

때문에 사무실은 매일 출근하는 일터가 아니라 재택근무하는 동료들이
이따금 만나 의견을 나누는 "회의 공간"으로 바뀐다.

가정이 "정보 항구"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는 직장내에서 받던 스트레스를 줄이고 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 천년 직업관에 적합하다.

재택근무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속한다.

직장보다는 직업의 개념이 강해져서다.

20세기에 직장 조직에서 팽배하던 남녀차별 의식이 사라진다.

섬세함과 예술적 감각으로 무장한 여성들이 가정에서 무서운 "직업전사"로
거듭난다.

따라서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더이상 "플러스 알파"의 존재가 아니다.

남성과 경쟁하면서 노동시장을 풍요롭게 할 따름이다.

이에 따라 종업원들의 창의력을 높여 주고 비용을 줄여 주는 재택근무제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미 선진국에선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는 추세다.

세계 3위의 통신업체인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컴(BT)은 직원 10만명중 무려
10%인 1만명을 재택근무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BT는 내년 3월까지 재택근무자 선발을 마치기로 하고 노동조합과 근무조건
등을 협의중이다.

BT의 영업부서 직원들과 기술인력들은 벌써부터 사무실 밖에서 대부분
근무하고 있는 상태.

회사측은 사무인력까지도 컴퓨터 팩시밀리 이동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하면
충분히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BT의 계획은 근로자들과 회사측 모두에게 환영받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회사인 휴렛팩커드(HP)도 1주일에 10시간씩 3일만 일하면
정규 보수의 75%를 받을 수 있고 주 4일씩 재택근무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이 제도는 남녀 공통으로 적용되지만 특히 육아 출산 등으로 회사를 떠났던
30대의 우수한 여직원들이 대거 재입사하는 계기를 마련,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통신이 서울지역 야간 114전화번호 안내업무를 완전 재택
근무체제로 전환, "직장인"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개인이 정보화로 철저히 중무장되는 뉴 밀레니엄에는 재택근무자로 대변
되는 "지식인간"이 "회사인간"을 대신할 전망이다.

회사인간이 농경민이었다면 지식인간은 유목민에 가깝다고나 할까.

< 남궁덕 기자 nkdu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