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에는 "이 대리 노트"라는게 있다.

대리가 작성한 노트다.

대리는 다름 아닌 이충구 사장.

이 사장은 대리 시절인 지난 74년 세계적 자동차 디자인업체인 이탈리아의
이탈디자인으로 파견근무를 나갔다.

자동차 디자인을 스스로 할 수 없던 시절 포니 디자인을 이 회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그의 표면적인 역할은 연락병.

디자인 진행상황을 회사에 일일이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동차 디자인의 전과정을 상세히 알아오는게 그의 임무
였다.

벽은 두꺼웠다.

남의 차를 디자인해주지만 과정은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진척도를 확인한다는 것을 핑계삼아 어깨너머로 모든 것을 확인해야 했다.

좌표를 어디에 찍는지, 선은 어떻게 그어 나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살펴봤다.

행동이 이상하다고 핀잔을 들은 게 한두번이 아니다.

당장 노트에 적어넣으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모두 것을 머리에 입력시켰다.

그리곤 하숙집에 돌아와 훔쳐본 내용을 밤을 새워가며 빠짐없이 필기했다.

그는 이렇게 주경야독을 1년이상 계속했다.

이 노트가 한국 자동차산업의 교과서가 된 "이 대리 노트"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용어설명 ]

<> CTO (Chief Technology Officer :기술담당 책임경영자)

=그룹 또는 기업별로 연구개발(R&D)부문의 업무를 종합 조정하고 총괄하는
임원이다.

기업의 R&D 규모가 확대되고 생산 판매 등 다른 부문과 연계가 중요해지면서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