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학고재 골목안에 보일듯 말듯 숨어있는 "현대시학" 편집실.

문패가 너무 소박해서 눈밝은 사람이 아니면 찾기 힘든 "시의 집"이다.

그곳에 가면 먼 산을 낚는 이순의 시인을 만날 수 있다.

등단 40년째를 맞은 정진규(60)시인.

그의 호가 "경산"이기 때문인지 문우들은 낚시와 관련된 선문답을 자주
던진다.

"어디 붕어낚시만 월척이 있나"

5일 저녁 남산 기슭 타워호텔에서는 그를 좋아하는 후배.제자 시인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잔치 이름은 "정진규 시인 시력 40년 시제"라고 붙였다.

이자리에는 동료 시인 김종해 이근배 오탁번 천양희 이건청씨와 후배 시인
이문재 연왕모 유용주 이규리씨 등 2백여명이 참석한다.

원로 시인 김춘수 김종길씨도 모처럼 다리품을 팔아 덕담을 주고받을
예정이다.

그는 고려대 국문과 1학년 때인 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40년동안 시에 생명을 걸고 외길을 걸어왔다.

지금까지 발표한 시만 6백여편.

하지만 아직도 습작기처럼 열병을 앓는 문학청년이다.

90년대 들어 더욱 치열해진 그의 시정신은 절창 "몸시"와 "알시" 연작으로
빛을 빌하고 있다.

그는 시간과 영원속의 우리 존재를 "몸"이라고 부른다.

"알"은 몸이 추구하는 우주적 완결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는 다시 말했다 햇살이 그의 따뜻한 혀로 이슬을 핥기 시작한 바로
그때쯤, 마침내 물 속에서 솟아오른 꽃을 두고 오, 물이 알을 낳았다고!/
그러니까 꽃은 알이다"("몸시.36 :물 속엔 꽃의 두근거림이 있다" 부분)

"몸이 놀랬다/내가 그를 하인으로 부린 탓이다/새경도 주지 않았다/몇십
년만에/처음으로/제 끼에 밥 먹고/제 때에 밥 먹고/제 때에 일어났다/몸이
눈 떴다//(어머니께서 다녀가셨다)"("몸시.66 :병원에서" 부분)

그의 시는 생명과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그는 "늘 "몸"과 의논해야 한다. "몸"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사물의
몸짓들을 읽을 수 있을 때, 생명들의 행간을 읽어갈 때 시의 행간 또한
빠듯한 탄력과 넉넉한 평화의, 자유의 충만으로 자리하게 된다"고 시론에서
밝혔다.

경기도 안성에서 10남매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안성농고 시절 동인시집
"아화집" "바다로 가는 합창"을 내면서 학원문학상을 받았다.

고려대 국문과에 입학한 뒤에는 은사인 조지훈 시인의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후 10여년간 교직생할을 하며 첫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과 두번째
시집 "유한의 빗장"을 냈다.

70년대 들어서는 시에 산문형태를 도입해 개인과 집단, 시성과 산문성의
통합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세번째 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77년)
로 문단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네번째 시집 "매달려 있음의 세상"을 내고부터는 시극 "빛이여, 빛이여"를
공연하는 등 시와 무대예술의 접목을 시도했다.

그의 "시 춤"은 "따뜻한 상징""오열도" 등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80년대초 1천개의 백자에 붓글씨로 시를 써 넣어 암울한 시대를 위로하던
일화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먹춤" "붓춤"까지 선보여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다.

그는88년 전봉건 시인의 작고로 월간 시전문지 "현대시학"을 승계해 12년째
주간을 맡고 있다.

< 고두현 기자 kdh@ >

[ 별 ]

별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