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모개신' .. 강은교 <시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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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개신이 무엇이냐구요.
짚신이랍니다.
짚신을 이북 사투리로 부르는 말이랍니다.
갑자기 웬 모개신이냐구요.
한 밤중에 일어나 겨우 CD 한장을 오디오에 걸었는데(우리집 오디오는
고장이 나서 요즘엔 한참 시도를 해야 겨우 듣게 된답니다)
아름다운 소프라노가 캄캄한 바다를 향해 퍼지니 갑자기 모개신의 그림이
떠오르는군요.
왜냐하면 모개신은 나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나의 어머님이 신으셨던 신발...
그럼 모개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요.
나의 어머니는 서울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1백일된 나를 업고 임진강을 건너
동두천에 도착하였답니다.
물론 갓난아기인 내가 울까 봐 입을 꼬옥 틀어막고...
서울에 막 들어섰을 때 제일 처음 어머니에게 주목한 사람은 동대문의
고무신 가게 주인이었다고 합니다.
"새댁, 고무신 하나 사세요. 아주 싸게 줄 테니..."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말없이 보퉁이에서 모개신을 꺼내 신으셨답니다.
그동안 동두천에서부터 맨발로 걸었던 것은 신발이 닳는 것이 아까워 그랬던
것이지요.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의 과거가 있는 것인지요.
그렇게 일생을 끌고 다닌 모개신 끝에 고무신 몇 켤레를 더 신으시다가,
그러다 아주 나중에는 구두라는 것을 몇번 신으시다가 돌아가셨으니까요.
정말 우리는 일생동안 몇 켤레의 신발을 신고 이 세상이라는 곳을 떠도는
것일까요.
하긴 나에게도 지금처럼 구두를 신기 전 어린 시절 고무신이라는 것을
신은 때가 있었군요.
고무신 뒤축에 자갈을 넣어 하이힐이라고 신고 다녔던 시절-밤중에 고무신을
신은 채로 집을 몰래 빠져 나와 종로 책방까지 갔었지요.
왜냐하면 그때 노벨상을 받은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이 번역되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기 때문이었지요.
아, 지금은 사라진 것들, 그러나 아름다운 것들, 사라지신 나의 어머니...
우리는 앞으로 몇 켤레의 신발에 먼지를 더 묻힐까요.
모든 살의 냄새를 풍기며 모든 현관에 던져져 있을 고무신, 구두...
그 모든 신발의 향기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새벽입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일자 ).
짚신이랍니다.
짚신을 이북 사투리로 부르는 말이랍니다.
갑자기 웬 모개신이냐구요.
한 밤중에 일어나 겨우 CD 한장을 오디오에 걸었는데(우리집 오디오는
고장이 나서 요즘엔 한참 시도를 해야 겨우 듣게 된답니다)
아름다운 소프라노가 캄캄한 바다를 향해 퍼지니 갑자기 모개신의 그림이
떠오르는군요.
왜냐하면 모개신은 나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나의 어머님이 신으셨던 신발...
그럼 모개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요.
나의 어머니는 서울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 1백일된 나를 업고 임진강을 건너
동두천에 도착하였답니다.
물론 갓난아기인 내가 울까 봐 입을 꼬옥 틀어막고...
서울에 막 들어섰을 때 제일 처음 어머니에게 주목한 사람은 동대문의
고무신 가게 주인이었다고 합니다.
"새댁, 고무신 하나 사세요. 아주 싸게 줄 테니..."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말없이 보퉁이에서 모개신을 꺼내 신으셨답니다.
그동안 동두천에서부터 맨발로 걸었던 것은 신발이 닳는 것이 아까워 그랬던
것이지요.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의 과거가 있는 것인지요.
그렇게 일생을 끌고 다닌 모개신 끝에 고무신 몇 켤레를 더 신으시다가,
그러다 아주 나중에는 구두라는 것을 몇번 신으시다가 돌아가셨으니까요.
정말 우리는 일생동안 몇 켤레의 신발을 신고 이 세상이라는 곳을 떠도는
것일까요.
하긴 나에게도 지금처럼 구두를 신기 전 어린 시절 고무신이라는 것을
신은 때가 있었군요.
고무신 뒤축에 자갈을 넣어 하이힐이라고 신고 다녔던 시절-밤중에 고무신을
신은 채로 집을 몰래 빠져 나와 종로 책방까지 갔었지요.
왜냐하면 그때 노벨상을 받은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이 번역되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기 때문이었지요.
아, 지금은 사라진 것들, 그러나 아름다운 것들, 사라지신 나의 어머니...
우리는 앞으로 몇 켤레의 신발에 먼지를 더 묻힐까요.
모든 살의 냄새를 풍기며 모든 현관에 던져져 있을 고무신, 구두...
그 모든 신발의 향기에게 인사를 하고 싶은 새벽입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