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뭔지... 무자식이 상팔자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김모(68) 할아버지.

2년전까지만 해도 아들 내외와 함께 손주들 재롱보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연락조차 끊고 산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다져온 인쇄업을 5년전에 아들에게 넘겨줬다.

직원은 5명 밖에 안되지만 일거리는 끊이지 않을만큼 탄탄한 사업체였다.

그러나 2년전 아들이 사업을 확장하자마자 IMF(국제통화기금) 한파가 터져
부도가 나고 말았다.

살던 집까지 넘어갔다.

아들은 김씨에게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거절했다.

당시 상황에선 장래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깨진 독에 물붓는 격이었어. 그때 돈을 주었더라면 그것마저도 다
날렸을 꺼야. 그런데 아들놈이 그 뒤로는 상종도 안해"

할아버지는 아들만 생각하면 못내 섭섭하다.

얼마전에는 손주들 얼굴이나 보려고 찾아갔다가 아들내외가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전세집을 얻어 혼자 지내고 있는 김씨는 점점 늙어가면서 후회가 늘어난다.

"그냥 다 줘버리고 손자들 재롱이나 보면서 얹혀서 살껄"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렇지 않아도 쓸쓸한 노인들을 더욱 외롭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다.

노인들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서 노인들이 겪는 고통으로 경제적 빈곤
다음으로 외로움을 꼽았다.

장성한 자식들이 도회지로 나가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떨어져 사는 노인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부담을 줄까봐 노인들 스스로 자식을 피하는 경향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인 혼자 살고 있는 노인독신가구가
전체 노인가구의 20.1%나 된다.

노인 부부만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가구도 21.6%다.

이렇게 따로 사는 노인들에게 자녀와 만나는 횟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 한달에 한번 만난다는 노인이 20.7%, 3개월에 1회가 15.7%로
나타났다.

무려 6개월이상에 한번씩 만난다는 노인도 7%에 달했다.

물론 아직은 절반이상의 노인들이 자식과 함께 살고 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덜주면서 손주들을 쉽게 보는 색다른 방법을 찾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사는 최모(71) 할아버지 부부는 따로 떨어져 살다가
최근 출가한 딸집 근처로 이사를 갔다.

딸 내외도 종종 들르지만 무엇보다 학교갔다가 할아버지 집을 들러서 집으로
가는 외손자를 보는 게 더없이 좋다.

외손자 먹을 거리를 장만하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다.

미국에 사는 아들 집엔 1년에 한번 가서 한달 쯤 머물다 온다.

최 할아버지는 "새 시대에 맞는 가족관이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통적인 대가족 체제를 고집할 수 없는 여건인 만큼 자식들에게 부담을
적게 주면서 가족의 정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대가족제도이 바람직하다면 3세대 동거가족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든지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 손성태 기자 mrhan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