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싱어 미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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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다리부러진 돋보기를 코허리에다 걸치고 졸린 것을 참아가면서,
보물 재봉틀을 타고앉아 바느질에 고부라졌다. 가르르, 연하게 구르는 재봉틀
소리가 달콤하니 졸음을 꼬인다"(채만식 ''탁류'')
지금도 50~6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중년층에게는 짙은 향수처럼 다가오는
전경이다.
희미한 백열등아래 손재봉틀을 돌리면서 옷을 짓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들던 기억들이 오롯이 남아있다.
일제시대에 처음 들어온 재봉틀은 미제 싱어였다.
하지만 싱어는 값이 비싸 여념집에선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재봉틀이 대중화되어 가정의 필수품이 되기시작한 것은 60년대에 국산제품이
몇종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꽃님이 시집갈 대 브라더미싱"이라는 광고카피가 나왔을 정도로 그때는
예비신부들의 혼수목록 1호였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기성복이 유행하면서 가정용 재봉틀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해 요즘은 가정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고 혹 있다해도 무용지물이
돼 버린지 오래다.
실용적 가정용 재봉틀을 개발해 전세계에 공급한 것은 미국의 아이작 싱어
(IM Singer)였다.
그는 1851년 40달러의 돈을 빌려 싱어사를 창립했다.
당시 가구당 연수입이 5백달러 였는데 재봉틀의 가격이 1백25달러나 됐지만
그의 탁월한 판매정책으로 회사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할부판매" "교환판매" "프랜차이즈 사업" 등은 이 회사가 고안해 낸 세계
최초의 판매방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1867년 스콧트랜드에 현지 생산공장을 차린 최초의 다국적생산회사이기
도 하다.
1908년에는 뉴욕에 당시 제일 높은 47층짜리 사옥을 세울만큼 확장을
거듭했다.
싱어사가 파산을 신청했다는 소식이다.
70년대이후 하향길을 걸어오면서도 1백48년을 지탱해 오던 장수기업이
쓰러졌다.
쟁기 다음으로 인류의 가장 축복받은 도구이자 가사노동서 여성을
해방시키기도 했던 가정용 재봉틀이 이젠 무용지물이 된 것일까.
시대 흐름에 따른 기술과 시장변화의 위력은 놀랍기만 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1일자 ).
보물 재봉틀을 타고앉아 바느질에 고부라졌다. 가르르, 연하게 구르는 재봉틀
소리가 달콤하니 졸음을 꼬인다"(채만식 ''탁류'')
지금도 50~6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중년층에게는 짙은 향수처럼 다가오는
전경이다.
희미한 백열등아래 손재봉틀을 돌리면서 옷을 짓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들던 기억들이 오롯이 남아있다.
일제시대에 처음 들어온 재봉틀은 미제 싱어였다.
하지만 싱어는 값이 비싸 여념집에선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재봉틀이 대중화되어 가정의 필수품이 되기시작한 것은 60년대에 국산제품이
몇종 나오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꽃님이 시집갈 대 브라더미싱"이라는 광고카피가 나왔을 정도로 그때는
예비신부들의 혼수목록 1호였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기성복이 유행하면서 가정용 재봉틀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해 요즘은 가정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고 혹 있다해도 무용지물이
돼 버린지 오래다.
실용적 가정용 재봉틀을 개발해 전세계에 공급한 것은 미국의 아이작 싱어
(IM Singer)였다.
그는 1851년 40달러의 돈을 빌려 싱어사를 창립했다.
당시 가구당 연수입이 5백달러 였는데 재봉틀의 가격이 1백25달러나 됐지만
그의 탁월한 판매정책으로 회사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할부판매" "교환판매" "프랜차이즈 사업" 등은 이 회사가 고안해 낸 세계
최초의 판매방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1867년 스콧트랜드에 현지 생산공장을 차린 최초의 다국적생산회사이기
도 하다.
1908년에는 뉴욕에 당시 제일 높은 47층짜리 사옥을 세울만큼 확장을
거듭했다.
싱어사가 파산을 신청했다는 소식이다.
70년대이후 하향길을 걸어오면서도 1백48년을 지탱해 오던 장수기업이
쓰러졌다.
쟁기 다음으로 인류의 가장 축복받은 도구이자 가사노동서 여성을
해방시키기도 했던 가정용 재봉틀이 이젠 무용지물이 된 것일까.
시대 흐름에 따른 기술과 시장변화의 위력은 놀랍기만 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