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콘덴서(HVC)는 전자레인지의 핵심 부품.

이 분야의 세계시장 점유율 1위가 바로 한성전자다.

지난 97년 12월 이 회사는 가동중단 위기에 몰렸다.

원.달러 환율 급등 등으로 원자재 수입이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해외 원자재 공급업체들은 한국계 은행에서 개설한 신용장을 믿어주지
않았다.

자신들이 지정한 외국은행에서 신용장을 개설하든지 아니면 현금으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세계 초일류의 기술력도 통하지 않았다.

대기업도 망하는 마당에 종업원이 1백명 남짓한 중소기업이 자금을 빌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생산품의 80%가량을 샤프 도시바 마쓰시타 히타치 미쓰비시 월풀 등
세계적인 메이커들에 공급하는 만큼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같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근로자들이 구사운동에 나섰다.

당장 급여와 상여금 반납을 결의했다.

"소모품 아껴쓰기 운동"을 통해 비용을 30%이상 줄였다.

회사측은 근로자들의 두달치 급여와 상여금 등을 모아 원자재를 겨우 확보할
수 있었다.

위기 뒤에는 기회가 오는 법.한성전자가 제때 납품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뒤
새로 거래를 맺자는 제의가 쏟아졌다.

기존 거래업체는 주문량을 늘렸다.

98년 3월부터는 감당 못할 정도였다.

"속된 말로 대박이 터졌다.

돈이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와 직원들에게 표정관리를 당부할
정도였다"(고호석 상무).

다른 중소기업들이 연쇄부도로 쓰러질때 이 회사의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10배 가량 늘어났다.

회사는 근로자의 "결초보은"을 결코 잊을수 없었다.

반납한 급여와 상여금을 모두 지급한 것은 "기본"이었다.

회사 이익의 일부를 임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이익옵션제"까지 도입했다.

이에따라 지난해말 3억원가량을 직원들에게 배분했다.

직원들은 수십만원에서 최고 3천만원까지 "특별 상여금"을 받았다.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반납을 결의한 배경에는 "열린 경영"도 한몫을
했다.

지난 83년 설립된 이 회사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대신 노사협의회가 활성화돼 있다.

회사측은 매달 1일 조회 시간에 월별 영업실적과 경영상태를 종업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분기별로 노사협의회를 개최, 경영자와 종업원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지
오래다.

여기에다가 사측의 고용안정 노력은 근로자에게 깊은 신뢰감을 안겨주었다.

지난해 상반기께 오디어 판매가 극도로 위축됐다.

오디오용 부품인 전해콘덴서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인력을 줄여야할 상황
이었다.

사측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공장에 와있던 중국인 연수생 15명을 계약종료
전에 돌려보내는 것으로 인력감축을 끝냈다.

한성전자는 지난해 1천2백만개의 고압콘덴서를 수출했다.

전세계 시장규모(3천만개)의 40%에 달하는 규모였다.

올해 생산능력을 1천5백만개로 늘릴 계획이다.

오는 11월께 첨단 정보통신 및 멀티미디어 부품을 생산하는 등 신제품
개발에 계속 나설 방침이다.

< 화성=이건호 기자 leek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