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자 한국경제신문은 "11월 금융대란설"을 보도했다.

이에대한 반응은 입장에 따라 각양각색이었다.

그중에도 재미있는 것은 정부의 반응이다.

정부는 일단 금융대란 가능성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이상 결단코 대란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대란"설"의 실체는 인정했다.

대란이 닥칠 것이라는 설이 금융시장에 돌고 있었음은 정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대란설이 돌고 있을 때 이를 수면위로 떠올려 공론화시키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겠지" 하고 마냥 기다리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다.

이는 단지 정부의 신뢰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아무리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다해도 문제는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각종 소문이 빛의 속도처럼 빨리 전파되는 사회다.

따라서 위기요인이 수면 아래에 잠겨있는 시간이 길수록 불안감만 증폭된다.

일단 잠복된 불안요인도 수면위로 노출되면 그 폭발력이 잦아들게 마련이다.

경제주체들이 나름대로 대처방안을 세워 자율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가는
자정능력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대처가 더 신속해질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파이낸스 사태는 좋은 교훈이다.

일부 파이낸스사의 경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감지됐었다.

만약 문제가 좀더 일찍 터졌다면 파이낸스 고객들의 피해는 훨씬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피라미드 금융사기의 원조격인 미국의 "폰지 사기" 사례가
보여준다.

20세기 초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카를로스 폰지는 지금의 피라미드 금융과
유사한 방식으로 단기간에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았다.

그 허구성을 폭로해 사기극을 종식시킨 것은 한 신문사였다.

만약 폭로가 늦어졌다면 피해는 더욱 더 확산됐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대란설의 공론화가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한마디로 문제의 본질을 조기에 노출시켜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만일 공론화 자체를 왈가왈부 한다면 그것은 "위기가 생각의 속도로 전파
되고 있는데도 문제점은 귀엣말로 쉬쉬해가며 숙덕거리고, 처방은 밀실에서
문서의 속도로 마련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 한상춘 전문위원 sc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