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나 대란이라는 것이 아무런 전조 없이 불쑥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거듭되는 사전 경고들이 모두 무시되고 그에 대비할 아까운 시간을 허무하게
낭비한 결과가 "위기"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할 것이다.

최근 금융시장에 나돌고 있는 11월 금융대란설도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은
아니다.

수익증권 환매제한 조치가 미봉책이라는 것은 본란에서도 여러차례 지적한
바 있지만 대우채권의 80%가 지급되는 11월11일 이후 매우 심각한 환매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만일 수익증권 환매사태가 투신사의 채권 매각, 금리 상승, 주가폭락의
악순환으로 연결된다면 우려했던 "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겠다.

공사채형 수익증권은 대우채권의 50%만을 지급하는 지금도 하루 9천억원
(10일)까지 환매되는등 최근 1주일 동안만도 이미 3조원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투신사들은 대우 채권과는 별도로 리스채등 거대한 부실채권을
지금껏 끌어안고 있다.

금감위는 투신사의 부실자산을 해결하기 위해 공적자금이라도 투입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워낙 규모가 커 구체적인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
이다.

구조조정의 터널을 이미 빠져나온 것 처럼 보였던 은행들이 터널을 다시
만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울 제일은행 매각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은행들 중 금융위기 발생
이전 수준의 해외신뢰도를 회복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3억달러의 중.장기 해외차입을 추진중인 기업은행은 여전히 미재무부채권
(TB)에 2.3~2.5%를 더한 가산금리를 요구받고 있고 대부분 은행과 기업들이
여전히 외국은행들의 크레디트라인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외채조기 상환이나 최근들어 다소 헐거워진 느낌을 주는
외환보유고 관리도 다시 한번 단단히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정부가 보증한 고금리 채무를 은행자체 신용의 저금리 채무로 대환하는
것이야 환영할 일이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별다른
대책도 없이 달러 자산을 줄여간다면 이는 그리 현명치 못한 일이 될 것이다.

국내은행들은 이미 41억달러의 외채를 지난 4월 조기에 상환한 바 있고
오는 10월8일에는 2차분 조기상환을 앞두고 있다.

물론 조기상환 여부는 개별은행들이 조건을 따져 사안별로 결정할 일이지만
일단은 보수적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금리 부담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자칫 해외부문으로
번지지 않도록 외화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해놓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더욱
중요한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