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전 우리회사가 이집트의 한 국영 석유회사로부터 가스처리 플랜트
공사를 수주한 적이 있다.

나에겐 플랜트 자동감시 및 운전시스템 설계의 임무가 주어졌다.

본사에서 설계가 마무리돼 가던 지난해 12월 나는 설계한 시스템의 현지
테스트를 위해 출장을 가게 됐다.

여자라는 특수성도 있고 공사현장이 몇해전에 총기 난사로 외국인 관광객들
이 무참히 살해된 곳이었기에 막상 출장을 가겠다고 자원했을 때 주위사람
모두가 걱정스러운 눈치였고 또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현장에 직접 가서 실무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와 앞으로 겪게 될
일들에 대한 설레임을 안고 출장길에 올랐다.

싱가포르 두바이 카이로를 거쳐 현장에 도착했을 때 처음 날 반기고 있었던
것은 현지인들의 신기하다는 눈빛이었다.

이집트에선 여자가 사막에서 일하는 것은 금기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가 이런데까지 와서 도대처 뭘 하겠다는 거지"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건설현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불어닥치는 모래바람 속에 풀 한포기 찾아
보기 힘든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였다.

하지만 여성인 나를 위한 그 어떤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와도 같았다.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스트레스와 멀고 먼 이국땅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 여성으로서 생활하는데 겪는 불편으로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집트 현지인들의 지식수준이 큰 골칫거리였다.

개인용 컴퓨터조차 익숙치 않은 그들과 함께 자동 플랜트를 짓는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만큼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현장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여자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라는 자존심 섞인 오기와 일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것도 없는 삭막한 허허벌판이었던 사막에 플랜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완성돼 가는 플랜트를 보면서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뿌듯함을 가질 수 있었다.

이집트 사막이라는 외딴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보낸 7개월은
돈으로 그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앞으로 여성 엔지니어들이 아무런 제약이나 편견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백희선 < 삼성엔지니어링 전임 pocas@samsu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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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