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머노믹스] (일터에서) '정확한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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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만들 때도 저울이 꼭 필요한 사람들"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면서 내가 막연히 가졌던 독일인에 대한 인상이다.
소금 몇 그램과 설탕 몇 그램을 잴 정도로 지나치게 정확해서 답답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들이 정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년째 독일 합작회사에 다니고 있는 내가 일터에서 구체적으로
접하는 그들의 정확함은 이제 아주 답답함이 아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내가 다니는 후프코리아는 자동차 잠금장치를 GM 등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
에 공급하는 회사다.
우리는 지난해 기존 제품에 추가하여 신규 차종의 제품 생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규 차종이라고 해도 제품이 기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원래 라인에 몇 공정만 추가하면 될 거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독일 엔지니어들은 굳이 전체 라인을 별도로 추가
설치했다.
차종이 서로 다른 제품이 한톨(?)이라도 뒤섞일 가능성을 처음부터 철저히
배제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들은 그렇게 지독했다.
우리 회사 작업장에 걸려 있는 표어는 독일인들의 이런 성향을 잘 보여준다.
"처음부터 또박또박 두번 다시 하지 않게"
초등학생 어투의 이 표어는 자못 유치해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곤 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어눌하지 않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또박또박 하지 않아서 아예 하지 않은 것만 못하거나
애써 다시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 점심엔 우리끼리 그룹 총수격인 후프 본사 회장 흉을 보면서 한바탕
유쾌하게 웃었다.
회의차 한국에 방문했던 그가 자국에 돌아가서 공항세 영수증 하나를 우편
으로 보내 왔다.
공항사용료를 대신 내준 우리 사장님의 사비 몇 천원을 염려하여 꼭 공금
으로 처리하라는 뜻에서 그 꼬깃꼬깃한 종이를 잊지 않고 챙겨 보냈던
것이다.
좀스럽다고 흉을 보았지만 사실은 모두 참 흐뭇했다.
이런 것이 내가 그들을 구체적으로 접하면서 느끼는 바로 그 신선한 자극
이다.
아직도 나의 정서에 그들의 정확함은 낯설고 가끔은 부담스럽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나도 언젠가 그들을 닮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 즈음엔 나도 요리할 때 저울을 쓰고 있지 않을까.
이정선 < 후프코리아 기획부 jslee@hufkorea.com >
-----------------------------------------------------------------------
<> 투고를 환영합니다.
팩스 (02)360-4274, E메일 venture@ked.co.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7일자 ).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면서 내가 막연히 가졌던 독일인에 대한 인상이다.
소금 몇 그램과 설탕 몇 그램을 잴 정도로 지나치게 정확해서 답답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들이 정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년째 독일 합작회사에 다니고 있는 내가 일터에서 구체적으로
접하는 그들의 정확함은 이제 아주 답답함이 아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내가 다니는 후프코리아는 자동차 잠금장치를 GM 등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
에 공급하는 회사다.
우리는 지난해 기존 제품에 추가하여 신규 차종의 제품 생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규 차종이라고 해도 제품이 기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원래 라인에 몇 공정만 추가하면 될 거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독일 엔지니어들은 굳이 전체 라인을 별도로 추가
설치했다.
차종이 서로 다른 제품이 한톨(?)이라도 뒤섞일 가능성을 처음부터 철저히
배제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들은 그렇게 지독했다.
우리 회사 작업장에 걸려 있는 표어는 독일인들의 이런 성향을 잘 보여준다.
"처음부터 또박또박 두번 다시 하지 않게"
초등학생 어투의 이 표어는 자못 유치해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곤 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결코 어눌하지 않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또박또박 하지 않아서 아예 하지 않은 것만 못하거나
애써 다시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 점심엔 우리끼리 그룹 총수격인 후프 본사 회장 흉을 보면서 한바탕
유쾌하게 웃었다.
회의차 한국에 방문했던 그가 자국에 돌아가서 공항세 영수증 하나를 우편
으로 보내 왔다.
공항사용료를 대신 내준 우리 사장님의 사비 몇 천원을 염려하여 꼭 공금
으로 처리하라는 뜻에서 그 꼬깃꼬깃한 종이를 잊지 않고 챙겨 보냈던
것이다.
좀스럽다고 흉을 보았지만 사실은 모두 참 흐뭇했다.
이런 것이 내가 그들을 구체적으로 접하면서 느끼는 바로 그 신선한 자극
이다.
아직도 나의 정서에 그들의 정확함은 낯설고 가끔은 부담스럽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나도 언젠가 그들을 닮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 즈음엔 나도 요리할 때 저울을 쓰고 있지 않을까.
이정선 < 후프코리아 기획부 jslee@hufkore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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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고를 환영합니다.
팩스 (02)360-4274, E메일 venture@ked.co.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