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한동안 외화에 밀려 고사되는가 싶던 한국영화가 되살아나고 있다.
"쉬리" 돌풍에 이어 여름극장가에서도 "인정사정 볼것없다"와 "유령"이
"스타워즈 에피소드1" "미이라" "오스틴파워" 등 할리우드대작을 제치고
약진중이다.
극장은 물론 비디오대여점에서도 한국영화가 단연 우세하다.
"쉬리" "간첩리철진" "내마음의 풍금" 등 한국영화가 "스크림2"
"라이언일병구하기"를 따돌리고 인기비디오 1.2.4위를 차지한다.
한국영화가 이처럼 도약기를 맞은 가장 큰 이유는 수준향상이다.
할리우드영화가 컴퓨터그래픽 등 기술에 치중, 스토리부재에 빠진 반면
한국영화는 재미와 작품성면에서 모두 괄목할만한 수준향상을 이룩했다.
이는 90년대초 대기업의 영상산업 진출을 계기로 한 장르의 다양화및
기획력 증가, 실력있는 젊은감독들의 등장에 힘입은바 크다.
이들은 독자적인 세상읽기 방법을 통해 한국인의 삶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
훔쳐보기와 대리만족이라는 영화의 기본재미를 충실하게 이행해낸다.
"편지"와 "접속"에서의 애틋한 사랑은 "약속"에서 멜로와 폭력의 복합물로,
"쉬리"에 이르면 남북문제라는 스케일로 발전한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우리사회의 금기사항이던 여성의 성욕구를 정면으로
다룬다.
"여고괴담"에선 학원문제를 공포라는 거짓주제를 통해 드러낸다.
최첨단 컴퓨터그래픽기술로 승부를 거는 한쪽에서 사라진 옛것에 대한
아스라한 그리움을 되살려내는 작업을 병행하는 것도 관객유인의 한
요인이다.
이같은 실력제고에 따른 고정관객 증가, 시네마서비스 등 메이저배급사의
극장확보력도 한국영화 대약진의 바탕이 됐다.
실제로 "인정사정 볼것없다"는 서울 21개 등 전국 70여개, "유령"은 서울
19개를 비롯 전국 60여개에서 개봉됐다.
스크린쿼터 해제와 직배영화의 위협속에 우리영화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어지간한 외화보다 한국영화 보는 재미가 훨씬 쏠쏠하다.
대기업이 한걸음 물러난 대신 창업투자사를 비롯한 금융자본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한국영화의 앞날을 밝게 한다.
그러나 "나쁜 영화"와 "이재수의 난"처럼 "의미"로 포장된 영화가 공존하는
게 우리 영화계다.
흥행이나 재미가 영화의 전부가 아닌건 당연하다.
그러나 거액을 투자한 영화가 역사도 사건도 인간심리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건 곤란하다.
할리우드영화는 언제고 재무장해 달려올수 있다.
유럽과 일본의 도전도 무시할 수 없다.
자본 등 제작환경의 한계를 감안, 경쟁력있는 장르를 찾아 승부하는 것만이
한국영화 돌풍을 순간의 기쁨이 아닌 21세기 영화한국의 초석으로 만드는
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