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도시오 < 일본 도쿄공업대학 교수 >

동아시아 각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에 걸쳐 세계인이 놀랄 정도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난 97년 태국에서 발발한 아시아지역의 외환위기는 이러한 고성장
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교훈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할 때 통화 및 금융위기에만 집착해 동아시아를 논해서는
안된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구조전환 연쇄"와 역내 순환구조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최근 10년간 동아시아지역의 경제성장 추이를 살펴보면 이 지역에서는
중심국의 성장과 구조전환이 주변국의 성장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이러한 주변국의 성장과 구조전환이 주변국의 성장과 구조전환을
촉진하는 연쇄적 계기로 작용해 온 것이다.

특이한 점은 선발 중심국보다도 주변국의 성장률이 한층 높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필자는 "구조전환 연쇄"라 부르고 싶다.

중심국에서 주변국으로 향하는 프런티어식 팽창운동은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통합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환연쇄의 과정에서 중심국과 주변국, 주변국과 보다 후발 주변국과의
사이에 연계성이 높은 무역 투자관계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아시아는 이전에 없었던 경제적 실체를 형성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최대 고객은 다름아닌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동아시아의 활발한 해외 직접 투자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는 주세력도 현재는
신흥공업국(NIES)을 중심으로 한 역내 국가들이다.

동아시아(NIES.아세안.중국)의 역내 교역비율은 1985년 26.3%에 불과했지만
1997년의 경우 39.5%로 상승했다.

이 기간중 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역 비율은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동아시아에 일본을 포함시키면 역내 무역비율은 39.0%가 되고 해외
직접투자의 약 80%가 역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난다.

상품과 투자자금이 역내를 순환하는 형태가 동아시아에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을 필자는 "역내순환구조"라 명명하고 싶다.

역내순환구조는 무역과 투자자금의 역내 의존도를 급속히 높였다.

이런 의미에서 아시아는 "아시아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유기적 통합체다.

동아시아의 경상수지는 아세안 여러나라의 경상수지적자를 상쇄하고도
남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에서 최대의 외화 보유국도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이러한 동아시아가 2년전 전체적인 규모로 통화 금융위기에 빠졌다.

이유가 무엇인가.

주요한 결제수단으로 여전히 달러화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실물경제는 높은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무역및 투자
결제수단으로 대부분 역외통화인 미국의 달러를 채택하고 있다.

외환보유고에 있어서도 달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기축통화는 여전히 달러이며 달러권으로의 통합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90년대 중반무렵부터 세계 각국의 공공 및 민간자금은 미국의 국채와 주식
투자등으로 급속히 몰려들었다.

일본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채권국인 일본이 세계 최대의 채무국인 미국의 통화 달러로
자신의 금융자산을 운용해 왔다는 얘기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이는 일본뿐만의 얘기가 아니다.

중국 말레이시아나 그밖의 동아시아 주요국들도 일본과 비슷한 방식으로
결제하고 금융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거대한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갔고 결국 미국경제를 활성화
시키며 주식 및 투자신탁시장의 활황세를 이끌었다.

여기서 부유화한 금융자산이 자기증식을 찾아 핫머니(국제적 단기유동자금)
의 형태로 신흥시장과 동아시아로 대거 유입됐다.

이 유입자본이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에 거품을 가져왔다.

동아시아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때 무역 투자 외환보유고
등 어느 것에 있어서도 달러가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는 이러한 구조는
바뀌어져야 한다.

동아시아와 미국의 자금순환에 있어서 달러가 결정적인 지배력을 발휘하는
이 구조는 어떻게 보더라도 부자연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실물경제의 역내순환구조에 적합한 자금순환구조를 구축하는 노력이 이제
부터라도 동아시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동아시아가 달러페그제(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사실상의 변동환율제로
이행한 것은 평가되어야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이 완전한 변동환율제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무역 투자 상대국으로서의 중요도에 따라 국제통화를 보유하는 소위
바스켓페그제의 채용은 새로운 동아시아의 통화 시스템 구축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갖는 일본의 중요성에 비춰보면 엔화 보유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무역과 투자에서 엔화가 통용되도록 일본이 노력해야 한다.

실물경제에서 통합도를 높여가는 동아시아가 이에 적합한 자금순환
메커니즘을 구축하지 않은 채 달러 보유에 집착한 것이 동아시아 지역에
금융위기를 가져온 원인이다.

< 정리=김재창 기자 char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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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1939년 일본 야마나시생
게이오대학 경제학부 졸업
동 박사과정(개발경제학)
쓰쿠바대학을 거쳐 도쿄공업대학 교수
저서로 ''성장의 아시아, 정체의 아시아'' ''한국벤처비즈니스''외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