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 < 미국 네브래스카대 경영학 석좌교수 >

새로운 천년이 불과 1백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 밀레니엄을 맞기에 앞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더욱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긴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몇십년간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다.

지난 50년간 전세계 무역량은 소득보다 증가속도가 무려 4배나 빨랐다.

각 국가와 세계인은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어 지구상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도 거의 같은 시간에 접해 보는 상황이다.

세계시장을 통해 최상의 제품을 어디에서나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다.

세계화는 인간들의 삶의 기준과 삶의 질을 급속도로 향상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계화는 한국에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한다.

필자는 이를 크게 4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이 넓어진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필요한 요건이다.

한국 것만을 고집해서는 세계로 진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문화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남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같은 문화권에서도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비일비재한데 남의 문화속에 뛰어들어 기업을 한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계화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둘째, 세계화는 적어도 경제적으로 한국의 문호를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외국기업의 한국시장 진출은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외국기업은 한국에 직접 진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기업경영 과정에서 부딪치는 문화적인 장벽 때문이다.

능력과 상관없이 연공서열에 따라 직원들을 처우한다든지, 이중장부를
기록하는 걸 관행으로 생각한다든지...

바로 이런 비합리적 기업문화는 한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기업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 시장을 열어 세계화하려면 기업관행이나 문화도 함께 국제기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셋째, 세계화는 경쟁자의 수도 함께 늘려 놓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비자는 어떤 것이 최상의 제품인지 손쉽게 감지하고 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만큼 공정한 게임의 법칙아래에서 무수한 경쟁자들과 까다로워진 고객을
상대로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한다.

이런 경쟁에선 진정으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끊임없이 자기변혁을 꾀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해서는 도태되기 쉬운 시대다.

개인의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이를 독특한
역량으로 가꾸어 가야만 하는 시대다.

마지막으로 세계화는 한국의 전반적인 사회.문화적 가치체계와 국민의
생활방식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면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침식하는
것으로도 비칠수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우수한 문화라도 물과 같이 고여있으면 발전할수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를 근간으로 새로운 문화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우리 것을 갈고 닦을때 우리 문화는 더욱 강고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한국문화를 발전시킬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번영의 길을 찾는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화는 분명 기회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대처를 게을리하는 국가에는 위협이다.

최근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종종 일본경제의 장기침체와 몇몇 아시아 국가의
잘못된 금융정책이 주원인으로 지적되곤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이보다 훨씬 깊숙한 데서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아시아 국가는 세계화가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다.

때문에 최근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오늘날의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많은 기업은 자국의 이해보다 고객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또 지식중심으로 기업가적 기질을 발휘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는 이러한 세계화 환경에 적응하는데
약점을 노출해 왔다.

유교사상과 전통에 기초한 가치기준은 개인의 창의성, 기업가 정신, 재량권
있는 근로자, 속도 중심의 경쟁, 투명한 경영, 책임경영, 준법에 의한 사업
관행이 형성되는데 걸림돌이 됐던 게 사실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을 거부하는 것은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멈추게 하려는
것과 같다.

일단 대외적으론 문을 활짝 열면서도 우리 고유의 가치체계를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화도 성공하고 한국인 우리 모두가 더욱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