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생명과학은 16세기이후 줄곧
지배해온 데카르트식 환원주의(reductionism) 방법론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연구 방법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 변화를 시도할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김성훈(41.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 박사의 주된 관심사는 "현대 생명과학
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다소 철학적이고 복잡할 것 같지만 그의 설명은 명쾌하다.

"20세기 생명과학이 인간복제, DNA 구조 분석 등 엄청난 성과를 올렸지만
결정적인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생명현상의 복잡성을 근본적으로 밝혀주지 못한데 있다.

"''인간 게놈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지금의 생명과학 연구가 유전자 구조나
각각의 기능을 개별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는 생체
구성인자들간의 복잡다단한 대화의 네트워크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생체
인자들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분석해 내는게 핵심이죠"

김 박사는 이를 "포스트-게놈(Post-Genome)" 시대를 맞은 현대 생명과학의
새로운 사명으로 표현했다.

유전자가 생명현상의 모든 것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과거에는 새로운
유전자 발굴에 몰두했지만 이젠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분석틀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 생명공학계에서는 이같은 포스트-게놈에 대한 하나의 연구 패턴
으로 "프로티오믹스(Proteomics)"라는 학문분야가 주목받기 시작했다는게
김 박사의 설명.

그가 맡아 진행중인 "단백질합성효소 네트워크 연구단"도 현대 생명과학의
이같은 추세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새포내에 존재하는 20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합성효소(ARS)들이 그들간에
그리고 다른 생명 분자들과 어떻게 상호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연구단은 지난해 과학기술부로부터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으로 선정돼
매년 10억원씩 지원받고 있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포스트 게놈 시대에 대비해 생명과학의 새로운
방법론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가 태동 단계를 넘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
입니다. 하버드나 칼텍 등 미국 유수 대학들의 경우 많게는 1억달러씩이나
투자해가며 생명과학을 다각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죠"

김 박사는 특히 이 분야 연구에서는 다양한 학문간 교차연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분자생물학뿐 아니라 화학 물리 공학 등의 노하우가 총체적으로 결집돼야
제대로 된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서울대에서 약학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물공학(석사)
을, 미국 브라운대에서 분자생물학(박사)을 전공했다.

당시 박사학위 논문은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와 "셀(Cell)"에
실렸고 이 논문으로 그는 졸업당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MIT에서 포스트닥을 마친후 지난 94년부터 성균관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 정종태 기자 jtch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