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란(46)씨의 새 시집 "스.타.카.토 내 영혼"(문예중앙)은 한토막씩 끊어
읽어야 한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읽힌다.

박제된 청춘의 상처를 중년에 되살려낸 시집.

유예됐던 한 시절의 절규가 옹이처럼 맺혀있어 더욱 아프다.

그는 스물두살에서 서른살 무렵까지 쓴 시에 "쓸쓸한 젊음에 바친다"는
부제를 달았다.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첫 시집 "다시 시작하는 나비"를 묶으면서 한쪽으로
제쳐뒀던 것들이다.

그때 그는 80년대를 외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뒤늦게 알리바이를 대는 듯해서
정치적인 성향의 시들을 뺐다고 한다.

악마주의적이거나 관능적 탐미주의 작품은 너무 생경할까봐 드러내지 못했고
종교적인 시도 사회과학적 상상력이 대종을 이루던 당시 자기검열로
밀쳐뒀다.

이번 시집은 그의 표현대로 "70~80년대 무자비한 억압의 터널을 맨몸뚱이로
통과하던 시절 젊고 서투른 영혼의 고통과 분노, 끔찍한 좌절을 담은"
그릇이다.

언어의 순결한 힘을 믿으면서 쏟아낸 자기존재의 증명이기도 하다.

시집 주제어는 "유령"과 "프랑켄슈타인" "구멍투성이의 혼".

"당신이 바깥으로 내어뱉은 피/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반란의 신표//헤매어
다니는 당신의 아픔을 알아/이승에도 저승에도 머물 수 없어서/죽은 뒤에
돌아오는 당신을 알아"("유령의 노래-노을, 반란의 언어" 부분) "유령"을
"홀로 남은 내 외로운 생명의 기억"과 "아가"로 치환시킨 대목에 오면 이번
시집의 통로가 보인다.

특히 "아가"는 갈수록 더 적극적인 이미지로 드러난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없이 "가려운" 현실에서 잉태된 생명이다.

그 시절 폭력과 계엄령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들이닥쳤다.

"우리가 추악한 젊은 몸뚱이를 껴안고/혀뿌리로 어버버버/얼마나 오랜 날 밤
새우며/숨어있는 신을 불렀던가"("젊은 프랑켄슈타인" 부분) 세상도 그에게
호흡이 짧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그러나 시인은 "난 스.타.카.토로 내 영혼을 자른다"고 맞빗장을 건다.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김영민씨는 이를 "근대 도시 난장이들의 눈높이를
위한 살신"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유령과 프랑켄슈타인에 몰두했던 까닭은 뭘까.

그는 "신은 죽었다" "근대는 끝났다" "주체도 죽었다"는 단언이 난무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근대성은 끝난 게 아니라 오리혀 심화되었다고 말한다.

근대란 죽음과 유령 드라큐라로 상징되는 개념이다.

보들레르가 "시체"로 시를 시작했듯이 김씨가 "유령"을 통해 신과 대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시집의 원고를 미리 본 문학평론가 황현산씨는 "내가 체험한 유신시대
와 80년대의 숨막히는 상황들이 한꺼번에 공감돼왔다"며 "버려진 돌들로
주춧돌 놓기, 아니 더 정확하게는 버려진 돌들이 주춧돌 되기의 전범을 보여
주고 있다"고 평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