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부시 < 미국 MIT대 교수 >

1년 전에는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이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후 모든 지역에서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다.

미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고 연방준비이사회는 적극적인 개입을
삼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의 사인에 시장이 잘 적응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경기침체가 지속돼 유럽중앙은행(ECB)은 이자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일본에서는 은행시스템이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브라질은 최악의 상황을 넘겼고 동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은 최악의
경제위기 이후 V자 형태의 가파른 경기회복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황이 좋아 보인다.

이 시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의문은 이렇다.

"과연 연방준비이사회가 현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선제적인 조치를 곧 취할 것인가."

무시못할 긴장이 세계경제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불안한 모습이다.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행여 달러화가 약세로
이어진다면 세계경제에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하다.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면 연방준비이사회는 즉시 시장 개입초치를 취할
것이다.

이는 10년 가까이 누려오던 호황이 종말을 고하게 됨을 뜻한다.

유럽은 아직도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우럽통합 이후 정책에 대한 합의가 손쉽지 않다는 점이 유럽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성장의 잠재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도 문제다.

어디에도 호재가 생길 기미는 없고 특히 독일은 심각하다.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이 경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유럽 입장에서는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유럽경제가 심각한 것은 경제체질의 취약성 때문이다.

만일 세계경제가 삐끗하기라도 하면 아무런 대응책을 마련할 길이 없는
유럽은 즉시 성장을 멈추게 될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까지 성장의 후퇴를 감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을 뿐이다

일본은 요란한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기미가 미미하다.

금융부문은 여전히 취약해서 신인도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언제든 부실채권 문제가 고개를 들 태세다.

집권 자민당의 거듭되는 소비부양 정책도 효과가 없다.

일본인들이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것도 앞날을 어둡게 한다.

일본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신흥시장의 경기회복은 해외자금의 유입에 달려 있다.

자금유입이 계속된다면 상황은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만일 미국이 긴축정책으로 돌아서기라도 해서 자금유입에 장애가
생긴다면 라틴 아메리카는 곧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금융기관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정부의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특히 위험하다.

일단 정부의 재정적자가 확대되면 균형을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세계경제전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OECD는 올해 세계경제가 전체적으로 2.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3.6%라는 높은 성장률을 이어갈 것이고 유럽은 1.9%의 성장률을
보일 것이다.

일본은 좀처럼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내년 이후에도 일본의 경기침체는 계속되겠지만 그 속도는 느려질 것이다.

유럽은 회생기미를 보이겠지만 미국은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다.

향후 전망에 관해 세가지를 지적할 수 있겠다.

첫째는 기록적인 장기 호황을 보이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호황에 대해 의아스러워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없는 장기호황이 이상할 것은 없다.

중요한 점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유럽인데 통합이후 유럽경제가 보이는 저성장은 실망스러운 것이다.

특히 통일 이후 독일이 보여주는 상황은 강한 우려를 갖게 한다.

유럽의 경기회복이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낮은 금리와 강한 달러가 계속된다면 유럽의 경제회복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자본시장의 강한 흡인력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유럽은 어디에서
장기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끝으로 일본은 주택경기 회생이 보여주듯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보일 조짐이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적인 현상이 전반적인 경기회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뿐 현실로 나타나기에는 아직은 무리가 있다.

이렇듯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생각은 단지 최상의 시나리오가
실현됐을 때만 타당하다.

문제가 돌출할 여지는 많고 취약한 부분은 도처에 숨어있다.

< 정리=박민하 기자 hahaha@ >

-----------------------------------------------------------------------

이 글은 미국 MIT대 교수이자 세계적 석학으로 존경받는 루디거 돈부시
교수가 21일 외환은행 본점 대회의실에서 ''세계 경제의 흐름''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