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현 < 고려대 경영학 교수 >

지난주의 주요 뉴스는 선거자금문제, 내각제개헌 연기설, 임창열 지사 수뢰,
신창원 검거 등 정치 및 사회 관련 기사들이었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주초에 전경련 부설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내놓은 "향후 대기업 환경변화와 대응과제"라는 연구보고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대기업이 향후 변화된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무구조와 사업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고 선진화된
기업지배구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정부의 재벌개혁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미 많이 논의되고
있는 사항들을 정리한 것이다.

하지만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이러한 내용의 연구결과
를 발표했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받았던 것은 재벌총수 중심의 경영체제에 관한 짧은
언급이었다.

경영체제가 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따라서 선진화된 경영체제의 확립은 한국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더 나아가
한국경제의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재벌의 경영체제는 세습으로 이어지는 총수 1인 중심체제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경영체제는 기업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세계 초일류기업들이 가지는
선진경영체제와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닌다.

첫째, 경영권이 혈연에 의해 세습된다는 점이다.

물론 2세 경영인의 경영능력이 뛰어난 경우엔 문제될 게 없다.

2세 경영인은 1세로부터 경영노하우를 전수받고 관련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유리한 측면이 많긴 하다.

하지만 능력없는 2세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엔 경영성과가 나빠지고
기업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현대증권의 이익치 회장과 주택은행의 김정태 행장의 경영성공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업가치창출에서 능력있는 경영진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경영능력 유무를 무시한 단순혈연에 의한 경영권의 승계는 초일류기업들에서
는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선진경영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오너냐, 전문 경영인이냐를 떠나
"능력있는 사람" 즉 해당기업의 가치를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경영을
맡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확립되어야 한다.

대주주 가족간의 승계가 아닌 기업가치창출의 관점에서 경영승계가 이루어질
때 선진경영체제로의 첫 단추가 끼워지는 것이다.

둘째, 총수 1인이 실질적으로 모든 계열사에서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물론 많은 전문 경영인들이 재벌그룹에서 개별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총수의
말에 감히 "노(No)"라고 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은 아마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능력있는 총수라도 혼자서 수많은 계열사의 급변하는 사업환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계열사 경영에 총수가 간섭하는 것은 잘못된 경영의사결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경영실패와 기업가치하락으로 직결된다.

이럴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총수 자신이다.

자신의 재산이 엄청나게 줄어드는 것 아닌가.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유능한 전문경영인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총수중심 경영체제의 문제점으로는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총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경영이 실패한 경우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실패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경기사이클이나 구조조정 여파로 일시적으로 고전하는 것을
실패라 단정짓기 곤란하다는 뜻이다.

또 여러 계열사 가운데 한두개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전체를 실패로 몰아가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어쨌든 장기적으로 실패한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 경영진이 퇴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총수가 경영실패를 책임지고 자발적으로 퇴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경영에 소질이 없는 오너가 자리를 지키려 할 경우 그는 자신의 재산을
축내는 셈이 된다.

실질적인 경영권을 가지지 못했던 애꿎은 고용 경영인들만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현실이다.

선진경영체제 구축의 세번째 과제는 경영성적에 따라 경영성과가 높은
경영인에게는 보상을, 경영성과가 좋지 않은 경영인에게는 책임을 묻는
책임경영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총수중심 경영체제에서 선진경영체제로의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가.

이는 전체주주의 이익을 위해 경영진을 규율하고 감시하는 독립적인
이사회의 확립으로부터 출발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의 이사회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주로 총수에 의해 임명되는 집행임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사회에서
독립적으로 능력있는 경영진을 임명하고 총수의 경영간섭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더욱이 총수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선진 경영체제의 구축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향후 재벌기업들은 선진화된 책임 경영체제를 가지게 될 때 진정한
초우량기업이 될 수 있음을 주지하고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전체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회의 확립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도 선진화된 책임 경영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줌
으로써 한국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