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머노믹스] (여성 파이어니어) 김경옥/용경중/박효숙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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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밤 9시께.
동대문에는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도시 전체가 잠든 새벽 2시에 이르면 동대문의 불빛은 절정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두산타워와 밀리오레.
패션상가의 최대 맞수인 이 두 곳에서는 미래의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꿈꾸는
4천여명의 "사장님"이 기업가 정신을 불태우고 있다.
이 가운데 80%이상이 여성.
동대문의 밤은 "여사장"들이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경옥(35), 용경중(35), 박효숙(26) 사장.
이들은 동대문의 밤을 움직이는 3인방으로 통한다.
동대문 의류상가의 매출순위 톱 10안에 드는 "잘 나가는 사장들"이다.
동대문에서 "일급비밀"이라 정확한 매출을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선두그룹 매장은 점포당 하루평균 3백만~4백만원어치의 물건을
팔아치우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간 10억~14억원의 매출은 올린다는 얘기다.
매출의 25~30%가 순익으로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사장들은 연간
2억~3억원이상을 벌어들이는 억대 고소득자인 셈이다.
동대문의 패션 3인방의 역할이 단지 "돈 잘 버는 여자들"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촌스러운 화려함"으로 대변되는 시장패션을 "세련된 단순미"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공도 크다.
무엇보다도 보장된 길을 뒤로 한 채 창업에 뛰어든 "기업가적 모험심"이
이들 3인방을 가장 빛나게 하는 자질이다.
밀리오레 3층 154호 "모나"의 김경옥 사장은 이런 점에서 단연 대표
케이스다.
김 사장은 88년 "논노" 입사를 시작으로 제일모직 동일레나운 등 10여년간
패션업계의 간판급 대기업을 두루 거친 베테랑.
"지난해 7월 선배를 따라 동대문시장에 놀러갔다가 백화점 못지 않은 최신식
밀리오레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안에는 좋은 품질에 백화점의 10% 값에
불과한 패션제품들로 가득 차 있구요"
김 사장은 "바로 이거다" 싶었단다.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곧장 사표를 던지고 실행에 옮겼어요"
막상 장사를 시작하자 더럭 겁이 났다.
물건값 1천~2천원을 놓고 고객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등 대기업과는
판이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여기서는 디자인에서 제품생산, 마케팅, 영업까지 혼자해 내는 1인만능형
인간이 돼야해요. 하루 5~6시간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일에 몰두할 정도로
고된 일과지요"
그러나 고생만큼 보람도 크다.
직접 디자인한 옷을 상품화하고 고객들의 반응을 내눈으로 매일 매일
확인하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단다.
수입면에서도 월급쟁이 시절의 10배 이상이다.
기업가적 모험을 감행한 대가다.
"이탈리아 유학파 디자이너가 동대문시장 옷장사(?)"
남성 의류점 "보우"의 용경중 사장이 두산타워 3층에 매장을 냈을 때 주위
에서는 이런 반응이었다.
용 사장은 패션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패션명문으로 알려진
마랑고니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 제일모직의 디자인 실장을 지내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녀 역시 그럴듯한 명함보다는 "내옷을 만들자"는 실속을 택한 모험가.
용 사장의 벤처정신은 디자인에서도 발휘됐다.
심플한 라인의 디자인을 고집하고 있는 것.
"주위에서 걱정들을 많이 하셨어요. 너무 튀면 안된다, 시장에선 1등을
하다간 망하기 십상이다, 2등을 해야 살아남는다, 이런 충고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남들처럼 따라하려면 동대문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용사장의 이런 고집은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세련된 도시풍의 고급디자인은 동대문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것.
밀리오레 2층 여성정장매장인 "아웃라인"에 가면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한명 앉아있다.
올 2월 대학(수원대 의류직물학)을 갓 졸업한 박효숙 사장이다.
그녀가 창업한 것은 4학년때인 지난해 8월.
"당시 의류업계는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던 때였어요. 취직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었죠. 그럴 바에야 장사를 하자고 결심했죠"
박 사장은 부모님을 졸라 가게 전세금을 마련했다.
결과는 대성공.
학창시절 갈고 닦았던 디자인 실력이 발휘되면서 박 사장은 창업 6개월만에
하루 1백벌 이상 판매를 기록하는 베스트셀러 매장주인이 됐다.
친구들의 우려섞인 눈길은 이제 부러움의 눈빛으로 변했다.
"사장님, 저 좀 디자이너로 써 주세요"라며 애교섞인 "인사청탁"을 해오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팔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은 게 박사장의
꿈이다.
그래서 동대문에서 번 돈을 유학 밑천 삼아 패션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꼭 유학 먼저, 실전경험을 나중에 해야한다는 순서가 있나요. 저처럼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도전정신.
이들 동대문 패션 3인방을 "석세스 우먼"으로 이끈 원동력이다.
< 최철규 기자 gra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일자 ).
동대문에는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도시 전체가 잠든 새벽 2시에 이르면 동대문의 불빛은 절정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두산타워와 밀리오레.
패션상가의 최대 맞수인 이 두 곳에서는 미래의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꿈꾸는
4천여명의 "사장님"이 기업가 정신을 불태우고 있다.
이 가운데 80%이상이 여성.
동대문의 밤은 "여사장"들이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경옥(35), 용경중(35), 박효숙(26) 사장.
이들은 동대문의 밤을 움직이는 3인방으로 통한다.
동대문 의류상가의 매출순위 톱 10안에 드는 "잘 나가는 사장들"이다.
동대문에서 "일급비밀"이라 정확한 매출을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선두그룹 매장은 점포당 하루평균 3백만~4백만원어치의 물건을
팔아치우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간 10억~14억원의 매출은 올린다는 얘기다.
매출의 25~30%가 순익으로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사장들은 연간
2억~3억원이상을 벌어들이는 억대 고소득자인 셈이다.
동대문의 패션 3인방의 역할이 단지 "돈 잘 버는 여자들"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촌스러운 화려함"으로 대변되는 시장패션을 "세련된 단순미"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공도 크다.
무엇보다도 보장된 길을 뒤로 한 채 창업에 뛰어든 "기업가적 모험심"이
이들 3인방을 가장 빛나게 하는 자질이다.
밀리오레 3층 154호 "모나"의 김경옥 사장은 이런 점에서 단연 대표
케이스다.
김 사장은 88년 "논노" 입사를 시작으로 제일모직 동일레나운 등 10여년간
패션업계의 간판급 대기업을 두루 거친 베테랑.
"지난해 7월 선배를 따라 동대문시장에 놀러갔다가 백화점 못지 않은 최신식
밀리오레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안에는 좋은 품질에 백화점의 10% 값에
불과한 패션제품들로 가득 차 있구요"
김 사장은 "바로 이거다" 싶었단다.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곧장 사표를 던지고 실행에 옮겼어요"
막상 장사를 시작하자 더럭 겁이 났다.
물건값 1천~2천원을 놓고 고객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등 대기업과는
판이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여기서는 디자인에서 제품생산, 마케팅, 영업까지 혼자해 내는 1인만능형
인간이 돼야해요. 하루 5~6시간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일에 몰두할 정도로
고된 일과지요"
그러나 고생만큼 보람도 크다.
직접 디자인한 옷을 상품화하고 고객들의 반응을 내눈으로 매일 매일
확인하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단다.
수입면에서도 월급쟁이 시절의 10배 이상이다.
기업가적 모험을 감행한 대가다.
"이탈리아 유학파 디자이너가 동대문시장 옷장사(?)"
남성 의류점 "보우"의 용경중 사장이 두산타워 3층에 매장을 냈을 때 주위
에서는 이런 반응이었다.
용 사장은 패션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패션명문으로 알려진
마랑고니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 제일모직의 디자인 실장을 지내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그녀 역시 그럴듯한 명함보다는 "내옷을 만들자"는 실속을 택한 모험가.
용 사장의 벤처정신은 디자인에서도 발휘됐다.
심플한 라인의 디자인을 고집하고 있는 것.
"주위에서 걱정들을 많이 하셨어요. 너무 튀면 안된다, 시장에선 1등을
하다간 망하기 십상이다, 2등을 해야 살아남는다, 이런 충고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남들처럼 따라하려면 동대문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용사장의 이런 고집은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세련된 도시풍의 고급디자인은 동대문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것.
밀리오레 2층 여성정장매장인 "아웃라인"에 가면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한명 앉아있다.
올 2월 대학(수원대 의류직물학)을 갓 졸업한 박효숙 사장이다.
그녀가 창업한 것은 4학년때인 지난해 8월.
"당시 의류업계는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던 때였어요. 취직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었죠. 그럴 바에야 장사를 하자고 결심했죠"
박 사장은 부모님을 졸라 가게 전세금을 마련했다.
결과는 대성공.
학창시절 갈고 닦았던 디자인 실력이 발휘되면서 박 사장은 창업 6개월만에
하루 1백벌 이상 판매를 기록하는 베스트셀러 매장주인이 됐다.
친구들의 우려섞인 눈길은 이제 부러움의 눈빛으로 변했다.
"사장님, 저 좀 디자이너로 써 주세요"라며 애교섞인 "인사청탁"을 해오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팔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은 게 박사장의
꿈이다.
그래서 동대문에서 번 돈을 유학 밑천 삼아 패션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꼭 유학 먼저, 실전경험을 나중에 해야한다는 순서가 있나요. 저처럼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도전정신.
이들 동대문 패션 3인방을 "석세스 우먼"으로 이끈 원동력이다.
< 최철규 기자 gra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