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헤매던 삼성자동차 처리가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과
삼성생명의 공개로 돌파구를 찾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영 잘못에 대한 오너의 책임논란을 불러올 기업 회장의 사재출연은 일단
접어두자.

그동안 금기시돼온 생보사 공개를 삼성자동차 처리의 돌파구로 삼은
"궁즉통" 해결책이 더 많은 논란을 몰고올 것 같아서다.

주식회사로서 경영의 투명성이나 주주의 명확한 책임을 가리기위해 공개가
바람직한 면도 있다.

에퀴터블 같은 미국 대형 보험사도 공개돼 있다.

공개된 외국보험사의 국내 진출에 대비하거나 대한생명에 쏟아부을 공적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도 생보사 공개가 필요할지 모른다.

생보사 공개는 업계의 해묵은 숙제이기도 하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은 지난 89~90년 공개를 추진했다가 수포로 돌아갔다.

계약자 몫일 수밖에 없는 보험사의 막대한 자산이 상장되면서 엄청나게 올라
그 시세차익을 주주가 챙기는데 따른 여론의 비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주주, 과거와 현재의 계약자가 공개로 얻는 시세차익을 어떻게 나눠 가질지
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생보사 공개가 업계의 희망사항으로 그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만큼 생보사 공개는 주주와 계약자 시민단체 학계 생보업계등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기나긴 여론 수렴이 필요한 것이다.

설령 공개가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공개로 얻는 차익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일은 어려운 숙제다.

공청회나 각계의 전문가 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삼성자동차 처리를 위해, 다시 말하면
이 회장의 사재출연을 뒷받침하기위해 불쑥 공개를 허용한 것은 당위성을
떠나 절차면에서 큰 하자가 있다.

이 회장의 재산을 현실화시키고 이것으로 삼성자동차 빚을 갚아 골치거리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공개가 이용되는 것은 정상적인 금융행정이라고 할수
없다.

금감위는 빅딜의 마지막 걸림돌을 걷어내고 삼성은 삼성차처리와 삼성생명
공개라는 두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풀게 됐다.

삼성차처리가 수개월째 미로를 헤맬때도 거론되지 않던 삼성생명의 공개라는
"히든 카드"(예상치 못한 수단)가 그 공신이 됐다.

< 고광철 경제부 기자 gw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