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설엔 모델이 있다고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로테가 괴테의 연인이던 샤로테라는 사실은
유명하거니와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에 등장하는 화가가 박수근이라는
것 또한 알려진 얘기다.

평양예술단 취재기를 통해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다룬 양헌석의 "아가베의
꽃"엔 주변에선 누구나 알만한 현직기자들이 나온다.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좋으면 별탈이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비가 생긴다.

"발가락이 닮았다"로 인한 김동인과 염상섭의 불화설은 대표적인 경우다.

김형경의 "세월"속 상대남자로 지목된 문인 H씨는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이휘소박사를 모델로 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쓴 김진명은 유족들로
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이문열의 단편 "사로잡힌 악령"은 주인공에 대한 묘사때문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단적인 예다.

중단편집 "아우와의 만남"에 실렸던 이 작품은 누구나 알만한 중진시인의
행적을 추적, 비난함으로써 파란을 불렀다.

"작품목록에서 빼겠다"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소설의 허구성과 창작자유의
한계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그럴듯한 이야기다.

때문에 허구라는 전제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소설속 인물에 대한 상상과
억측이 가능하다.

어디까지 픽션이고 어디서부터 넌픽션이냐는 물음은 닭과 달걀의 관계와
비슷하다.

"가족시네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일본 도쿄지방법원에서 단행본
발간금지 처분을 받았다.

소설의 모델인 친구가 개인신상이 너무 상세히 묘사돼 고통받았다며
제소한데 따른 것이라는데 유씨는 전체적으로 픽션임을 들어 승복할수
없다는 입장이라 한다.

작가 주변의 일을 소재로 한 사소설이 유독 많은 일본에서 명예훼손을
들어 출판금지 판결을 내린 진짜 까닭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다.

모든 소설은 자전소설의 성격을 띤다.

괴테는 "나는 겪지 않은 것 나를 애타게 하지 않은 것은 작품으로 쓰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경험을 다루더라도 창의적 상상력을 곁들여 인간의 보편적 문제로
승화시켜야 공감대를 자아낸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열에 매달리면 소설의 완성도에 관계없이 주변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문제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양심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