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미 < 애니메이션 컨설턴트 코리아 대표 >

"안 하니까 못하는 것 찾기"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 같은 문화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필자의 일이다 보니 자연히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과 힘든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빈번히 오르내리는 화제 한가지는 아이디어 도둑에 대한
것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명인 이 분야에서는 무수히 많은 창작 시나리오나
기획서들이 투자자나 파트너를 찾아 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으레 업계의 몇몇 힘있는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쓸만한
기획들은 조금씩 첨삭의 단계를 거쳐 어느 사이 최초의 아이디어는 아무도
주인임을 주장할 수 없도록 애매하게 둔갑된다.

설사 주인이 분명해 지적 소유권 다툼으로 이어져도 결국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결과로 인한 피해의식이 확산될 뿐이다.

아이디어 무용론의 울분섞인 극단론이 제기되는 현실이 21세기 문턱에 와
있는 한국영상업계의 현주소다.

선진국과 같은 계약시스템의 부재를 탓해 보지만 실제 이런 일을 겪게 되면
그 절망감은 헤아리기 힘들다.

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관급프로젝트의 경우에도 기득권 세력들 때문에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벤처기업들은 두렵다.

관료들의 경우 컨설팅에 대한 비용부담을 주고 대학교수들에게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히 몇몇 프로젝트 교수들이나 자본력 있는 안전한
기업에 일이 집중된다.

프로젝트가 많은 교수들의 경우 제자들의 아이디어와 노동력이 모두 여기에
동원되지만 실적은 오로지 교수 한사람의 것이다.

대학사회의 이런 권위주의 문화만 아니었으면 대학생 벤처창업은 장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일이다.

대학 사회의 권위주의가 21세기 신지식인 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분쟁을 자주 접하다 보니 아이디어만 있으면 당신도 신지식인
이라고 주장하는 공익광고를 보면 웬지 공허한 생각이 든다.

문화산업이 중요하다면 무엇보다 곳곳에 뿌리박힌 권위주의에 짓눌려 숨을
죽이고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존중하고 살려내야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심형래 씨가 신지식인이 된 것은
아니다.

돈을 벌기 전에도 그가 이미 신지식인의 자격이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신지식인을 많이 찾아내야 한다.

그거야말로 못하니까 안하는게 아니라 안하니까 못하는 것 아닌가.

< party00@ unitel.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