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항공화물의 잇단 "배달사고"가 변호사업계의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수입업자가 신용장 개설은행의 허락없이 화물을 반출한 뒤 수입대금을 갚지
않고 부도를 내는 사례가 빈번해졌기 때문.

얼마전 조흥은행은 운송업체인 동원물류와 보세창고업체인 구로보세창고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섬유수입 업체인 B&J산업의 의뢰로 신용장을 개설, 양모수입대금을 지급해
줬으나 은행허락없이 구로보세창고에서 보관중인 화물을 찾아간 것.

이 업체는 수입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도산했다.

조흥은행은 자신의 허가없이 물건을 내준 동원물류와 구로보세창고로부터
배상을 받기로 했다.

복합운송협회는 현재 서울지법에 계류중인 유사사건만 40여건, 소송가액만
3백억원에 이른다고 밝히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도 안나와 소송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통관제도가 문제 =수입 항공화물은 공항도착후 보세창고->세관->운송주선
업자를 거쳐 수입업자에게 최종 인도된다.

그러나 이미 신용장 네고를 통해 물품대금을 대지급한 국내은행은 이를
전혀 알 수가 없다.

통관제도 자체가 운송업자가 발행하는 항공화물 운송장(AWB.AirWay Bill)의
원본없이도 물건 반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신용장 개설은행에 선하증권(B/L)을 제시해야 물품을 가져갈 수 있는 해운
화물과 달리 항공화물은 이러한 안전장치가 없다.

지금까지는 수입업자가 물건을 반출한 뒤 나중에 은행에 대금을 지급하는
관행이 정착돼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사태이후 수입업자의 부도로 대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은행과 운송.창고업체들의 주장 =은행은 신용장상 물건의 수령인은
은행이며 수입업자는 물건도착을 통보하는 통지처에 불과한 만큼 확인의무를
소홀히 한 운송업체와 창고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보세창고와 운송업자는 법적으로 은행에 수입대금이 결제됐는지를
확인할 권리가 없다고 반박한다.

현행 관세법상 공항에 도착된 화물은 수입자가 지정하는 창고로 운송하도록
규정돼있는 만큼 은행의 허가없이 물건을 보낸 것은 불가항력이라는 것이다.

<>해결방안 =김&장의 서동희 변호사는 "예전에는 세관이 발급한 수입승인서
없이 물건반출이 불가능했다"면서 지난 96년 12월 대외무역법 개정이전 수입
승인서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부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은행의 지급확인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물품인도승낙서(Delivery
Order)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경합동의 최종현 변호사는 "화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운송업체나 창고
업체가 대금지급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역시
물품인도승낙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화주입장에서 보면 물품인도 승낙서를 도입할 경우 항상 화물적체
현상이 일어나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고 관련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항공화물이 수입서류보다 빨리 도착하기 때문이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