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남북 해군간에 교전사태가 벌어졌던 지난 15일 국내 금융시장은
의외로 평온했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서 예금을 인출한다든지 달러사재기 라면사재기와
같은 동요의 조짐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실제로 은행 예금을 인출, 현금을 확보해 둬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어찌 될까.

언제든지 인출할 여유 예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럴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 특히 많은 서민과 빈곤층은 어쩌면 좋을까.

IMF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값진 교훈도 있고 아픈 상처도 있다.

중산층의 붕괴랄까 몰락도 그 하나다.

쉬이 치유되기 어려운 IMF상처에 속한다.

그래서 정부는 지금 중산층을 되살리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중산층을 다시 일으켜 세워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
사회적으로 안정기반 구실을 하게 만들까 고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자세율 인하안이 불거졌다가 금세 사그러들었지만 진작에 떠오른
중산층 보호대책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가 다름아닌 연대보증제의 손질이다.

아예 없애는 걸 목표로 하되 우선은 일정금액, 이를테면 1천만원이하 대출에
한해서만 허용하고 그것도 직계가족만 연대보증인이 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금년 봄, 금융감독원이 중심이 되어 깊이있는 검토가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구상은 최근 은행연합회에 의해 그 구체안이 만들어져 오는 23일 공청회에
부쳐질 참이다.

어떤 의견들이 나올지, 과연 실행에 옮길만한 개선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지
두고봐야겠지만 연대보증제의 축소 내지 폐지시도에 대한 반응은 입장에 따라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보증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거나 친지의 보증요청을 거절하느라 난감한
경우를 당해본 사람은 일단 환영하는 쪽에 선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특히 보증을 잘못 선 탓에 IMF사태를 맞아 거덜 난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반대하는 쪽도 만만찮다.

변변한 담보는 물론 내세울만한 신용은 더욱 없는 서민과 영세.소상인들에게
는 그나마 비싼 사채 말고 기댈만한 유일한 생활.생업자금 융통수단인데 그
길마저 봉쇄해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중산층보호를 위해서라지만 정작 중산층마저도 실직 혹은 보증피해 등의
연유로 보증인을 세워 은행돈을 써야할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은행과 당국쪽은 어떨까.

은행은 당국이 하라니까 마지못해 따라가는 입장일 것이다.

오랜 관행일뿐더러 개인대출 채권확보를 위해 아직은 담보 말고 그만한 게
없는데 없애자니 내킬리 없는 것이다.

신용조사란 게 말이 그렇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처럼 경제활동의 투명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부당국도 명분과 당위론에 따라 일단 내놓긴 했지만 실행에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보는 입장인 듯하다.

당국과의 조율을 거쳤을 것으로 짐작되는 은행연합회의 연대보증제 개선
방안이 논의 초기에 공개됐던 내용과 비교할때 시행시기와 방법 등에서 많이
후퇴하는 쪽으로 바뀐 걸 보면 암직하다.

결국 연대보증제는 손질이 필요하긴 하지만 현실성 없는 발상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폐지는 말할 것 없고 축소나 제한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은행을 앞세워 당국이 정책차원에서 밀어붙이려는 건
잘못이다.

혁명적 발상에서 법률로 강제한다면 또 모를까 은행 내규 같은 것으로
실행해 볼 생각이라면 그건 흔하디 흔한 규제만능 사고의 연장일 따름이다.

모든 은행이 일제히 1천만원 한도로 직계가족 혹은 직계존비속에 한해
언제부터 획일적으로 연대보증제를 허용하고 또 언제부터 아예 철폐해야
한다고 못박는 것부터가 문제다.

그런 일은 이젠 은행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경쟁차원에서 차별화할 수 있어야 한다.

IMF이전 국내은행들은 주로 예금의 유치에만 경쟁해왔지 대출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커미션까지 받고 빌려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런 안이한 은행경영, 좋은 시절은 다 갔다.

대출경쟁이 중요해졌다.

스스로 고객의 신용을 파악하고 부실채권을 최소화해야 하게끔 되었다.

연대보증제도는 은행경영이 경쟁확산과 선진화에다 신용사회가 성숙되면서
언젠가 스스로 축소.소멸될 것이다.

당국과 은행이 할 일은 그런 신용사회를 앞당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 연대보증인은 일이 잘못되면 대신 갚는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

책임의식은 모든 서명행위에서 중요하다.

그게 희박한게 문제다.

연대보증제가 필요 이상으로 성행하는 풍조, 보증피해가 흔한 것 등이 결코
제도자체의 결함탓만은 아니라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