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리코 아산공장 본관은 인본주의 건축미학의 결정체다.

삶의 체온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살아있는 건물''이다.

철저하게 사람을 근본으로 생각하고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건물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늘 신선한 감동을 준다.

신도리코 아산공장은 충남 아산시 인근 야산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본관은 아산공장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아침마다 경사진 진입로를 오르는 수백명의 근로자들을 맞는 공간이기도
하다.

회사가 크든 작든 본관은 가장 좋은 자리에 위압적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건물은 "버릇없이" 진입로를 가로막고 있지않다.

한쪽에 다소곳이 비켜 서있을 뿐이다.

건물 입구는 크게 열려있다.

3층까지 터놓았기 때문이다.

두팔과 가슴을 벌려 반갑게 품어앉는 형국이다.

급하게 달려온 사람들도 본관 입구에 서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 건물은 대지도 옹색하다.

폭이 좁고 길며 경사도 심하다.

못생긴 터였지만 설계자는 이곳을 무시하지 않았다.

경사지를 계단형으로 절개하고 대지를 따라 길게 건물을 앉혔다.

경관훼손을 줄이고 단지와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배려다.

건물은 멀리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뛰어난 전망을 반대급부로 선사받았다.

본관건물에선 수시로 변하는 전원풍경을 볼 수 있다.

광장처럼 열린 출입구는 건물의 앞뒤로 개방돼 있다.

넓게 열린 이 공간은 주변의 온갖 잡초와 꽃이 뿜어내는 자연향을 가득담고
있다.

본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원한 폭포와 분수가 반긴다.

폭포 위로는 유리로 덮인 천장을 통해 직사광선이 쏟아진다.

잘게 부서진 포말은 햇빛과 어우러져 반짝인다.

폭포와 분수를 지나면 탈의실과 식당이다.

직원들은 탈의실을 거쳐 각자 일터로 흩어져간다.

이 건물은 사무공간과 직원들의 지원시설로 구성됐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이 건물 저층부에는 식당, 카페, 극장, 회의실 등의
복지공간이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3,4층에는 사무공간이 들어 있다.

모든 사람들은 이 건물을 거쳐 각 공장으로 가도록 돼있다.

이들은 식사시간에 다시 모여 서로의 일체감을 확인한다.

본관은 공장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끈한
매개체다.

화합과 결속의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한다.

건축공간의 기능적 조화는 이처럼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아름답게 엮어
낸다.

건물외형은 직사각형과 수직선을 정연하게 엮어 극도의 간결미를 드러낸다.

건물 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온전하게 담아내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또 장식 배제와 공간의 내실화를 덕목으로 내세우는 건축가의 주관도 작용
하고 있다.

1층 출입부문의 개방공간과 직원식당은 공간연결의 뛰어난 조화를 보여준다.

식당의 앞면은 커다란 사각형의 전면 유리로 시원하게 처리했다.

여유로운 전원풍경과 드넓은 하늘이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시원스런 풍경에 근로자들의 피곤함이 그대로 녹아
내린다.

식당은 전면유리를 아예 여닫이문으로 처리해 근로자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포용한다.

눈앞의 풍광을 입체적으로 만끽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내외공간의 벽을 없앤
것이다.

문을 열고 한발짝만 옮기면 싱그러운 자연이 온몸을 감싼다.

전면 유리를 따라 길게 깔린 마루는 전망을 감상하는 멋진 발코니가 된다.

식당에서 이어지는 2층에는 카페와 전망좋은 휴게실을 배치했다.

2층으로 올라서면 눈높이를 달리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들어온다.

잠시 사색을 하거나 동료간의 정담을 나누기 좋은 낭만적 공간이다.

3,4층에 배치된 사무공간도 최대한 개방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강한 개방성은 지나친 광선노출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는 건물 외향에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해결된다.

건물 전면 외부에는 가늘고 얇은 스틸 가림막을 설치했다.

은빛 가림막은 직사광선을 걸러주면서 건물의 기하학적 조형미를 더 돋보이
게 한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은 북쪽으로 옮겨가면서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뒤로 물러선다.

곡선의 입면속에 감춰진 공간은 극장이다.

공연장임을 외부로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이 곡선은 딱딱한 전체 외형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이 건물은 겸손하고 절제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 절제가 공장근로자들에게 위로와 활력을 준다.

그러면서도 화려한 치장으로 허세를 부리는 어떤 건물보다 아름답다.

공장건물이어서 더욱 빛난다.

< 박영신 기자 yspark@ >


[ 건축 명세 ]

<> 설계 : 민현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
<> 시공 : 두산건설(주)
<> 규모 : 대지면적 44,507평, 연면적 2,355평, 건축면적 672평, 지하 1층
지상 4층
<> 위치 : 충남 아산시 남동 1
<> 공사기간 : 1994.12~1996.6
<> 구조설계 : 서울구조
<> 조경.인테리어 : KDA
<> 설비 : (주)한일EMC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