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김태정 법무장관을 유임시키면서 "마녀 사냥"식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다.

대통령 자신이 마녀 사냥식 여론조작의 폐해를 체험한 데서 나온 신중한
결정이라 생각된다.

마녀 사냥이 나쁜 이유도 그것이 "비과학적 여론조작"이라는데 있다.

그런데 기자의 눈에는 지금 한국의 경제계에서도 비과학적인 마녀 사냥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기서의 마녀는 재벌들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조중훈 전 한진 회장의 퇴진 과정이 그랬다.

그는 잇따라 항공사고를 일으킨 마녀로 지목됐다.

"비전문경영인의 권위주의적 경영"이 그가 건 주술이었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심증일 뿐이다.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진단은 물론이고 상하이 공항에서의 사고원인 규명조차
안된 상태에서 나온 판결이었다.

30여년을 항공업에 종사해온 사람을 "단지 오너라는 이유때문에" 비전문경영
인으로 규정해야 하는지도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재출연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회장은 자동차사업 진출이라는 주술을 걸어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
마녀로 지목됐다.

따라서 "사재를 털어 그 손해를 메워주라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사회적 압력의 실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실체가 확인되려면 적어도 소액주주들에 의한 집단소송 등의 절차가 필요하
다.

사재를 얼마나 출연해야 하는 지도 주먹구구식이다.

5천억원이라는 소리도 있고 3천억원이라는 소리도 있다.

마녀 사냥 얘기에 뒤늦게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재벌들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재벌에 대한 규제가 비과학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5대 그룹의 부채비율 축소만 해도 그렇다.

부채가 너무 많은 것은 물론 나쁘다.

하지만 종합상사 등 업종에 따라서는 2백%를 맞추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획일적으로 이를 강요하고 있다.

비과학적인 마녀 사냥의 결과는 몇해전 국내에도 개봉된 "크루서블"이라는
영화가 잘 보여준다.

평화롭던 한 마을이 마녀 소동끝에 주민들의 반목과 갈등으로 와해되고
만다는 내용이다.

재벌에 대한 "마녀 사냥"도 대기업 종사자들과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간의
반목만 빚어내지 않을까 걱정돼 하는 말이다.

< 임혁 경제부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