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해를 살다 간 그녀는 바흐 모차르트 비틀즈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

프란시스 레이의 "눈싸움(Snow Frolic)"으로 유명한 영화 "러브 스토리"는
올리버의 이같은 독백으로 시작된다.

실제로 가난한 제니퍼는 모차르트의 "피아노소나타 12번"과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을 연주하면서 온갖 시름을 잊고 학업과 사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수천마리 새들이 석양속에 날아오를 때
우려퍼지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협주곡 A장조"는 보는사람 모두를 광활한
아프리카초원으로 데려간다.

뿐이랴.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틀어준 모차르트의 "저녁바람이 부드럽게"를 들은
레드의 대사는 압권이다.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새처럼 날아가는 기분을 맛보았고 잊고 있던 자유의
소중함을 느꼈다"

음악은 이처럼 사람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한다.

음악의 문외한이라도 외롭고 삶의 목표를 잃었을 때 클래식을 들으면 위안을
얻는다.

레코드 감상도 좋으려니와 간혹 음악회장에 들르면 각박하고 살벌한
세상살이에서 한걸음 비껴나 따뜻한 눈을 지니고 싶게끔 만든다.

그러나 모처럼 큰맘 먹고 음악회장을 찾은 사람에게 작곡자 이름에 곡명까지
몽땅 영 불 독 이탈리아어 등 원어로만 써놓은 팸플릿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베르디작 "여자의 마음"은 "La donna e mobile", 슈만의 연작가곡 "여자의
사랑과 생애"는 "Frauenliebe und Leben" 라고 써놓으니 보통사람들은 무슨
곡인지 알길이 없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17번 템페스트" 또한 "소나타 d단조 작품 31~32"라고
해놓아 어렵게 만든다.

모음곡을 조곡으로 표시하는가 하면 일상용어에선 사계라는 말을 안쓰는데도
여전히 비발디의 "사계"라고 부른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거리의 여인"을 뜻하는데도 주인공
비올레타(제비꽃)의 일본식 의역인 "춘희"를 그대로 사용한다.

최근 음악계에서 이처럼 원어일색 표기나 잘못된 일본식 제목을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인다는 소식은 반갑다.

청중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없이 클래식팬이 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건
곤란하다.

전석 초대권 발행의 관행에서 벗어나려면 팸플릿의 연주곡목부터 쉽게
풀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