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 경남대 교수 / 사회학 >

이건 도가 지나치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장관 부인들이 연루된 고급 옷 스캔들과 검찰의 수사작태는 실로 점입가경
이다.

이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진실을 찾는 일은 아예 틀렸다는 것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셜령 진실이 밝혀져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현주소다.

그래서 지금 국민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허탈과 분노에 빠져 있다.

과거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우리는 많은 기대를 했다.

대통령 혼자 칼국수로 점심을 때우면서 사정, 부패척결, 윗물맑기운동,
개혁을 부르짖는 동안에 대통령 아들을 위시해 주위 인사들이 불법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대형 비리에 개입하여 정권을 망쳤다.

정권만 망친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부도로 몰고 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겼다.

그런 뼈저린 실수 때문에 정권교체가 가능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를 교훈삼아 유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중대한 약속을 했다.

물론 국민은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IMF의 불을 껐다고 자신하더니 드디어 오만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개혁은 물 건너 간 듯하고, 이제는 개혁이 아니라 제발 과거만은 답습하지
말라는 주문을 해야 할 형편이다.

그런데 이미 여러 분야에서 빨간 불이 들어 왔는데도 무시하더니, 부인들
까지 오만방자함의 대열에 섰다.

이런 정부가 집권방식외에 5공, 6공과 뭐가 다를 바 있을까 의문이 짙게
든다.

아무리 권력과 정치판에 윤리와 도덕이 없다고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야 한다.

문민정부 다르고, 국민의 정부 달라야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는가.

국민들은 대단한 정치를 바라지 않는다.

점차 나아질 정도의 정치만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문제를 최소화시켜 보더라도, 이번 스캔들의 핵심은 법무장관 부인이다.

스캔들 처리의 핵심도 그녀에 관한 부분이고, 법무장관의 거취다.

검찰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사의 부인을 공정하게 수사한다는 일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불가능한 일을 놓고 난리를 치고 있는 셈이다.

과연 검찰수사 방향은 이미 상대적으로 힘없는 관련자 구속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만약 진실을 밝히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검찰의 공정한 수사라고 한다면,
그 전제는 법무장관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검사들이 반대하고, 여야가 국회에서 제도적으로
반대표시를 분명하게 한 인물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데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현 여당의 과거 약속인 인사청문회나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법무장관을 꼭 제 자리에 두어야 한다면 즉각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여, 이
사건부터 그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만약 인사청문회제도를 만들어 지난번 개각 때 법무장관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이루어졌다면, 이번 사건은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권력욕, 명예욕, 물욕, 과시욕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 욕심의 정도다.

지나친 욕심을 다스리기 위해 윤리가 있고, 급기야 법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문제가 된 여인들은 이미 윤리를 팽개쳤다.

그리고 불법의 혐의가 짙은 것으로 보인다.

불법을 얼버무리기 위해 검찰과 권력의 수뇌부가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는
혐의도 간다.

우리가 IMF사태를 만났을 때, 서양사람들이 그 원인으로 부패와 정실을
들어 우리를 조롱한 바 있다.

심히 불쾌한 관측이지만 일리가 없지 않다.

IMF사태를 극복하겠다고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이 그 눈물어린 노력을
기울였던 바로 그 기간에, 앞장서 솔선수범해도 시원찮을 사람들은 정작
꼭 정반대의 작태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점이 밝혀진 이상 서양사람들의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이제 현 정권에게 빨간 불이 들어왔다.

국민에게 더 이상 환멸과 분노를 주지 말고 최소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도록 분발해야 할 것이다.

환멸과 무관심, 냉소 후에는 한결같이 위기가 동반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잘 나가는 여인들이여.

봉사와 자선이라는 말을 더럽히지 말라.

제발 무리지어 다니면서 설치지 말라.

외제 고가 옷 입었다고 뭐가 달라지나.

내조는 못한다 하더라도 좀 수더분하게 있을 수 없을까.

위선이라도 좋으니 자제해달라.

잘 나가는 남자들이여.

잘 나가려거든 집안 단속 잘하라.

옛 말이 틀린 것도 있지만 또한 기막히게 옳다는 사실을 교훈 삼기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