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감증명 ]


방금 전에 상담을 하나 했다.

친구가 은행에서 융자받을 때 보증을 섰는데 그 친구가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자신에게 대신 갚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분이 질문하시길 인감증명도 떼어주긴 했지만 보증설 때는 다 형식적인
것이라고 했단다.

그래도 갚아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런 어이없는 질문이 또 있을까.

알다시피 인감이란 도장중에서 동사무소에 미리 등록해 놓은 도장을 말한다.

중요한 거래를 할 때 그 계약서에 찍은 도장이 본인의 도장인지, 또 본인이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찍은 것인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인감도장을 찍는다.

동사무소에서 발급받은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해놓으면 나중에 "어, 이 도장은 내 도장이 아닌데..."하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을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인감증명서는 본인이나 본인의 주민등록증을 지참한 대리인이
그 인감을 갖고 가지 않으면 절대로 발급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동산을 팔고 사거나 남의 빚보증을 서는 경우에는 거의 이 인감을
이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변호사를 하다보면 이 인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막히고 가슴아픈
사연을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다음의 경우도 남의 탓만 할 수 없는 경우에 속한다.

어떤 30대 남자분은 느닷없이 날아온 채무독촉장에 당황했다.

자신이 자동차 할부매매에 보증을 섰다며 차를 산 사람이 할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아 대신 빚을 갚으라는 독촉장이었다.

도대체 보증을 선 사실이 없는데..

그는 차를 산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아내 찾아 나섰다.

어렵게 찾아내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 사람도 역시 자신은 차를 산 적이
없다는 맹물같은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함께 서류를 돌려받아 확인해 보니 자신이 보증을 섰다는 보증계약서
에는 분명 자신의 인감증명서가 붙어 있었다.

황당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앗차! 싶었다.

몇 달전 급히 돈을 쓸 일이 있어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간 사채업자 사무실
에서 인감증명서 몇통을 요구받은 일이 있었다.

급한 김에 3통을 떼어다 주었다.

돈을 주겠다고 약속받은 사흘 뒤에 가보니 사무실은 이전하고 없었다.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인감도장은 내가 갖고 있으니 설마 별일이야
있겠는가 하고 잊고 지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인감증명서와 똑같은 인장을 위조해 써먹은 듯 했다.

하기야 위조지폐도 만들어내는 세상에 도장 하나 똑 같이 만들지
못하겠는가.

그때 돈 준다는 날에 인감증명서를 맞교환했어야 했는데.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인가.

이 분은 현재 소송중에 있다.

결국 법정 싸움에서 이기기는 하겠지만 시간적 정신적 손해를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

서울 시내에만 인감이 찍힌 종이만 있으면 돈 몇푼에 똑 같은 인감도장을
순식간에 위조해 주는 곳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참으로 주의해야 할 세상이다.

순간적인 판단 잘못으로 인감 도장을 찍어 주거나 인감증명서를 교부하게
되면 한평생 후회할 수도 있는 재앙을 만날 수도 있다.

도장을 찍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인감은 그 사용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법이다.

< 변호사 먼데이머니 자문위원 (02)594-4884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