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카스는 1970년이래 거시경제학 연구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준
경제학자이다"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 노벨상 추천 위원회의 로버트 루카스에 대한 노벨상
수상 이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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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5년 10월 루카스의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직후 보스턴 글로브지에
아주 재미있는 기사가 게재됐다.

루카스가 노벨상과 더불어 수상한 상금 백만불을 이혼한 전처와 반반씩
나누어야 할 처지라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이미 82년에 별거한 뒤 89년에 정식 이혼한 사이였다.

그러나 그의 처가 이혼할 당시 단서조건 중 하나로 만약 1995년10월 31일
이전에 노벨상을 수상할 경우 그 상금을 반반씩 나누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루카스의 대표적인 공헌이 거시경제학에 합리적 기대를
도입하였다는 점과 더불어 많은 사람의 이야기 거리가 됐다.

이혼한 처가 경제학에 관심은 없었지만 미래의 남편의 확실한 수입을
예상하고 있었다면 그에 대해 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람으로서
당연하다고 하겠다.

루카스가 언젠가는 당연히 노벨상을 수상하리라는 것은 전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82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스티글러도 그 직후 똑같은 상이 루카스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위에 언급한 신문도 루카스야말로 아마도 시카고 대학이 보유한 마지막
확실한 노벨상 수상 예상자였다고 쓰고 있다.

루카스는 케인즈 이론을 바탕으로 한 뉴딜 정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인
부모 밑에서 성장하였다.

또 그가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할 당시 프리드만은 그에게 가격
이론을 가르쳤을 뿐.

그에게 거시 경제학을 가르친 사람은 모두 당시 케인지안 모형을 이용하고
있던 하버거, 베일리 그리고 크라이스트였다.

따라서 그의 성장과정이나 초기 경제학 연구에는 케인즈의 영향이 컸으리
라고 짐작된다.

사실 그의 박사학위 논문도 하버거의 지도 아래 이루어졌으며 하버거의
요구에 의한 자본 노동간의 대체관계에 관한 계량적인 연구였다.

그러나 루카스는 시카고 대학 재학시절부터 조금씩 프리드만의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됐다.

루카스가 박사학위 후 첫 직장인 카네기 공과 대학 (현 카네기 멜론 대학)
에서 만난 그의 동료 교수인 쟌 무스와 탐 사젼트 그리고 박사 과정 학생이었
던 에드워드 프레스캇과의 교감은 그 후 루카스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나갔다.

루카스의 이러한 변신은 그의 연구 과정을 좇아가면 오히려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루카스는 이미 시카고 대학 시절 독학으로 폴 새뮤엘슨의 "경제분석의 기초"
를 읽고 수학적인 분석에 매료되어 있었다.

카네기 공과 대학에서의 초기 연구는 거시경제를 동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수학적 방법론을 동원했다.

이러한 견고한 분석 방법의 연마는 그가 그후 거시 경제학에 미시적 기초를
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케인즈의 이론은 미시적인 기초가 결여되어 있었고 따라서 루카스는
케인즈의 모형에 미시적 기초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모형의 결과는 케인즈의 결론을 뒤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신관호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khshin@kuccnx.korea.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