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를 움직이는 두 사람은 루빈재무장관과 그린스펀 FRB(미연방준비제
도이사회) 의장이다.

그들은 미국경제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움직인다.

그들의 한마디에 세계경제가 긴장하고 주식시장이 요동을 친다.

그중 루빈재무장관이 여러번의 사의표명 끝에 클린턴행정부를 떠나게 됐다.

그는 사임이유로 사랑하는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굳이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머리를 식히면서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자함일
것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행정부내에서 자기역할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미 경제의 호황을 유지하는데 그가 쏟은 노력을 폄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클린턴대통령은 그의 사임을 발표하고 새장관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 정부도 오늘 개각을 단행한다.

거의 조각수준의 개각이다.

그간 몇몇 장관들이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이유는 루빈과는 영 다르다.

1 년도 채 남지않은 내년 총선에 대비해 지역구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에 돌아가 일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그래서 어느 장관은 자리를 내던지고 당에 복귀해 단박에 중요직책을 맡아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제 날려갈지 모르고 재수없으면 험한 꼴까지 당해야 하는 장관보다 임기가
보장되는 국회의원이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의 이력서에는 장관의 경력이 하나 더 붙여져 유권자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이번 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입각한다.

모두 다 능력이 있고 경륜이 출중한 사람들이다.

그동안의 인사에서도 이력만 본다면 어느 하나 나무랄데가 없는 사람들이
공직을 맡아왔다.

그러나 잘못된 인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공동정권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때문에 또는 이러저러한 이유에 따른 잘못된
정보때문에 수긍키 어려운 인물들이 등용되었던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범초기 부터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여론을 수집한다든지 "존안카드"를 다시 작성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 인사는 김대중정권의 향후 진로와 관련돼 각별한 의미가
있다.

김대통령 취임후 2기 조각의 성격인데다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안고 있어서이다.

김대통령이 지난 1년5개월동안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외환위기는 극복됐다지만 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중이고 빅딜도 진행중이다.

노사문제 역시 우리 산업의 뇌관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외국투자가들 역시 아직 우리경제에 확신을 갖고 있는것 같지는 않다.

최근 방한한 캉드시 IMF 총재도 좀 더 과감한 경제개혁을 채근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2기 내각은 삶의 선진화를 위해 사회공공재를 창출해야 하는
짐을 동시에 안고 있다.

지금까지의 행정이 경기회복과 구조조정을 병행시키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삶의 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교육 환경 교통 노후 등을 해결하는 다원적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정치.의식.생활의 현대화가 필연적으로 뒤따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이중에서 정치의 현대화는 가장 앞서서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정치중심적인 체제아래서는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분에서 정치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판단아래 이뤄지는 인선의 기준도 단순히 개혁적이나
전문성을 따지기 이전에 지역대결과 보수세력의 중심에서 얼마나 초연했느냐
하는 점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지역을 안배하고 특정보스를 고려한 인사를 한다면 당장은 편할지 모른다.

열흘도 남지않은 서울송파와 인천 계양.강화갑 재선거, 더 나아가 내년
총선을 여당간 불협화음없이 쉽게 이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단견이다.

오늘 입각하는 인물들은 21세기를 맞아야 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에 서 있다.

그래서 각오가 남달라야 한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정치적인 야망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일을 관철
하겠다는 의지. 나보다 더 나은 인재가 있다면 스스로 자리를 물려주는 용기.
잘못된 일이 생기면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아량. 만일 돈을 받았다면
대가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양심. 신지식사회에 기여한다는 소명의식" 이런
사고와 행동양식을 가진 인물을 대망한다.

미국정치가 신선감을 갖는 것은 신진대사가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루빈처럼 스스로가 자기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진퇴를 분명히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이다.

이번 개각에 단 한명이라도 이런 인물이 끼었으면 한다.

< youngba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