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웅 <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jwsim@erinet.lgeri.co.kr >

연방준비제도(FRB)의 공개시장조작회의(FOMC)는 통상적으로 1년에 8차례에
걸쳐 개최된다.

따라서 10년이면 적어도 80차례의 공개시장조작회의가 개최되는 셈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지난 5월 19일 회의만큼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적도 흔치 않다.

미국의 4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0.7%까지 급상승하면서 공개시장조작회의가
금리인상을 결정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97년에 발생한 아시아 통화위기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겨우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 이 때에 미국의 금리인상이 자칫 미국경기를 냉각
시킨다면 세계경제의 회복기조 자체가 크게 뒤흔들릴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
이다.

이번 공개시장조작회의에서 미국 금리인상은 보류했지만 4월의 물가상승
기조가 몇 개월 더 지속된다면 언제든 금리인상을 단행할 준비가 돼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달리 일본이 전후 최악의 불황국면을 탈출하기
전에, 유럽이 현재의 성장세 둔화에서 벗어나기 전에, 아시아와 중남미
개도국들이 통화위기의 악몽을 떨쳐버리기 전에 미국경기의 둔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연히 문제의 초점은 현재 미국경제가 금리인상 위험에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현재 미국의 경제주체들의 재무상태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91년 이후 장기호황이 지속되면서 미국의 민간저축과 투자의 갭이 지속적
으로 확대되었고 98년에는 급기야 GDP의 5%까지 불어났다.

민간저축과 투자의 갭이 이처럼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민간의 지출이
가처분소득의 증가를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의 경기확장을 위해서는 민간경제주체들이 더 많은 부채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5월 6일 연방준비이사회 의장 그린스펀이 지적한 "미국 의 장기호황국면이
가지고 있는 불균형"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미국 민간의 가처분소득에 대한 원리금상환부담액 비중은 90년대초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현재 17.5%에 달하고 있다.

90년대초 불황의 씨앗을 제공했던 80년대말의 상황과 유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경기에 의외로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80년대말 버블붕괴의 후유증으로 영국, 일본, 핀란드,
스웨덴 등이 겪었던 불황도 모두 민간저축과 투자의 갭이 GDP의 5% 안팎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바 있다.

금리인상은 단지 방아쇠의 역할을 할 뿐이다.

물론 이 방아쇠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누적에 따른 돌연한 달러 약세가
될 수도 있다.

문제의 요체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민간경제주체들의 대차대조표의
상황이 개선되어야만 다음번 경기확장을 준비할 수있다는 점이다.

"뉴 이코노미"에서도 이 점은 변할 수 없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일본은 약 1,200억달러, EU는 1,100억달러,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1,100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문제는 미국이 이중 얼마를 책임져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미국경제의 불균형이 연착륙을 통해 조정될 수 없다면 한국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당장 주식시장의 폭락은 민간소비를 크게 위축시킬게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경기 둔화와 이에 따른 세계경기 성장률 저하는 수출감소뿐만 아니라
설비투자의 감소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반드시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 부동산시장의 고평가 정도는 주식시장에 비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평가되고 있다.

미국 가계의 주식보유비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주가 하락에 따른 소비
감소 효과는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감소 효과의 4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미국의 인플레압력이 지속돼 금리인상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주가가 폭락한다고 하더라도 80년대말 90년대초와 같은 불황이
재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금리인상 속에서도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이 원하는 시나리오는 미국 경제가 무한정 "잘 나가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소폭의 금리인상에 따른 연착륙, 바로 그것이다.

그 이유는 무한정 잘 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산이 높을수록
골이 깊어지는 일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0일자 ).